[경제청론]금리 낮춰 기업 숨쉴 틈 열어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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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금 우리 경제는 원란과 환란이라는 두 가지 대란 (大亂) 의 와중에 있다.

고금리하의 자금경색을 의미하는 원란을 극복하지 못하면 기업의 연쇄부도와 이로 인한 실물경제의 붕괴를 피할 수 없고, 외환부족과 환율 불안으로 특징지어지는 환란을 극복하지 못하면 국가부도 사태를 면키 어렵다.

문제는 원란 극복을 강조해 금리를 낮추면 외환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고 환란을 극복하려고 고금리를 유지하면 기업의 집단부도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인하대 남명수교수와 외국어대 강효석교수가 지난 가을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요 상장기업의 투하자산수익률은 평균 8%인데 비해 자본비용은 평균 14%수준이다.

한마디로 투자수익률이 이자율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기업들의 부도사태가 결코 일시적이거나 외부환경 요인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의 경쟁격화.내수위축.환차손 등으로 우리 기업들의 투하자산수익률은 더 낮아졌으리라는 점, 4백%가 넘는 부채비율, IMF관리체제 이전의 2배 수준으로 오른 금리수준등을 감안할 때 많은 우리 기업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업구조 및 재무구조의 개선과 경영의 내부효율성을 높여 투하자산 수익률을 자금조달비용보다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의 집단질식사를 막기 위해 화급한 과제는 금리수준을 낮춰 숨 쉴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IMF 주장대로 고금리 정책은 지나친 소비와 투자를 억제하고 환란 극복을 위해 필요한 외자도입의 촉진과 자본의 해외 유출을 억제하기 위해 필요한 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 질문들에 심각하게 답해 보아야 한다.

현 수준의 고금리로 인해 거의 모든 기업이 쓰러지고 경제가 무너진 다음에 환란극복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기업의 연쇄도산과 실업급증으로 사회분위기가 극도로 불안한 나라에 과연 외국 돈이 들어오겠는가.

또 꽁꽁 얼어붙어 있는 소비와 투자가 금리수준이 다소 낮아진다고 해서 빠른 시간 내에 다시 과열될 가능성이 있는가.

물론 큰 폭의 금리인하로 환란을 심화시키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IMF와 정부가 상황을 보아가며 시중금리를 단계적으로 인하시키는데 합의한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다.

1단계로 콜금리는 20%수준, 3년만기 회사채금리는 15%수준을 겨냥해 통화정책을 폈으면 한다.

이 정도면 건실한 기업을 살리면서도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외국자본의 유인 효과도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다.

이것이 성공한 후의 2단계 목표는 IMF이전의 금리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될 것이다.

금리의 하향조정과 함께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외환 확보를 위한 대책이 빈틈없이 집행되어야 한다.

단기외채의 중장기채 전환노력, 시장원리에 입각한 정책의 투명성과 일관성 유지, 금융개혁의 가속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기업경영의 투명성확보와 구조개선, 경상수지 흑자폭 확대 등을 통해 외국투자가들이 한국민의 개혁의지와 한국 경제를 믿게 해야 한다.

환란을 잘 극복하지 못하면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게 될 것이지만 원란 극복이 환란 극복의 기반이라는 것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윤호 〈LG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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