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쪼개 소년소녀가장 돕는 임영길씨 "이웃사랑은 돈보다 마음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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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에도 남몰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온정은 여전하다.

롯데호텔 방재담당 직원 임영길 (任永吉.53.서울송파구삼전동) 씨는 넉넉하지 않은 경제사정에도 호주머니를 털어 14년째 불우 청소년을 돌보고 있는 소년소녀가장의 '아버지' .

任씨가 소년소녀가장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지난 85년.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홀로 살림을 꾸리고 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전해들은 任씨는 한국어린이복지재단의 소개를 받아 그 길로 경기도동두천시의 소년가장을 찾아 나섰다.

단칸방에서 2남2녀 등 여섯식구가 함께 살 정도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任씨는 스스로 어려운 청소년 시절을 보냈기에 그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아는 처지였다.

박봉을 쪼개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주말엔 직접 집으로 초청, 식사를 같이 했고 친자식들과 함께 재우며 의형제.남매 결연을 맺어주었다.

아버지 역할을 자청해 학교에 달려가 선생님과 면담하기도 했고 예민한 사춘기 청소년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한편 때로는 회초리를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任씨와 인연을 맺은 소년소녀가장들은 모두 10여명. 지금도 3명의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해 한달에 15만원을 내놓는 한편 5년전 어렵사리 마련한 20평짜리 자택에서 주말마다 이들과 함께 조촐한 가족모임을 갖는다.

처음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남을 돕는 것을 의아해하던 가족들도 직접 소년소녀가장들의 집에 찾아가 어려운 사정을 듣고 한집안 식구처럼 지내고 난 이후 태도가 싹 달라졌다.

“가난은 죄가 아니고 남을 돕는 일도 부자만의 권리가 아니지요. 아무리 어려워도 애들은 바르게 길러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봄방학을 맞아 찾아온 소년소녀가장 오혜연 (16) 양.박정용 (14) 군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던 任씨의 말이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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