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 잇단 부도로 땡처리업자들 취급물량 홍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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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IMF 한파로 '땡처리' 업계가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다급해진 제조업체들이 브랜드 체면을 따지지 않고 물량을 쏟아붓고 있는 데다, 소비자들도 실속구매 행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눈물의 부도세일' 을 실시하고 있는 서울서초동 아크리스백화점. 본관 지하 1층과 신관 2.3.4층 등 3천여평 매장을 땡처리업자들이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나온 제품은 50여개 업체, 1백여개 브랜드에 이른다.

나이키.엘레스.버클리.미찌코 런던.서지오 바렌테 등 하나같이 유명브랜드들이다.

품목도 신사.숙녀.아동.스포츠의류.내의.잡화.가전.주방용품 등을 망라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실시했던 뉴코아백화점 본점의 '부도업체 상품세일' 에 비해 10배 규모나 된다.

아크리스백화점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우림 안금석 (安金石.49) 사장. 지난 89년 중학교 교사직을 버리고 동대문 청평화시장에서 의류유통업을 시작한 이래 9년만인 지난달 처음으로 월매출 2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10월까지는 월매출 1억원에 종업원도 20명 남짓이었다.

이달에는 3억원의 매출을 내다보고 있다.

종업원도 파트타이머를 포함해 42명으로 늘었다.

땡처리란 정상가→바겐세일→균일가 (이월상품전) 판매를 거치고도 남은 2~3년 된 재고품을 70~90% 할인가에 내놓는 판매의 마지막 단계를 말한다.

그러나 IMF사태 이후 기업의 경영여건이 악화되면서 바겐세일→땡처리 2단계 코스가 일반화되다시피 했고 나산.한주.이신우 등 부도업체가 속출하면서 일부 신상품까지 곧바로 땡처리업자의 손으로 넘어오고 있다.

안사장은 "A급 브랜드의 경우 종전에는 명성에 흠집이 갈 것을 우려해 재고를 국내에 내놓지 않고 헐값에 수출하거나 불에 태워버렸지만 최근에는 땡처리업자의 손으로 넘어오고 있다" 고 말했다.

부진한 매출을 만회하려는 백화점.호텔의 유치경쟁도 땡처리업자의 전성시대에 일조 (?

) 하고 있다.

백화점 등이 땡처리업자로부터 받는 판매수수료가 종전 18%선에서 10%로 인하된 것이다.

그러나 땡처리업자의 번성은 우리 경제의 어두움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제조업체에서는 떨떠름한 표정이다.

'땡처리업자 = 유통업계의 하이에나' 로 인식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안사장은 "제조업체에는 급전을 마련해주고 알뜰 소비자에겐 실속상품을 제공, 유통업계의 윤활유가 되고 있다" 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 경제가 워낙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많이 팔려도 불안하다" 며 씁쓸해 했다.

현재 국내 땡처리 업체는 1천여 개로 추산되고 있다.

이 바닥에도 이미 출혈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안사장은 "올 봄 제조업체의 대량부도와 실업 대란이 현실화되면 땡처리 물량확보도 어려워지고 그나마 알뜰소비 행렬마저 끊길 우려가 있다" 며 "IMF한파가 장기화되면 땡처리업자도 몰락을 피할 방도가 없다" 고 말했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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