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政·官의 잔치 언제 끝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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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고용조정법과 기업개혁관련법이 마련됐다.

경영상 필요할 때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게 됐고 대기업의 구조조정과 투명성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바라던대로 국제경쟁력을 가진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판사들이 변호사들로부터 온라인 입금으로 정례적 상납을 받아온 사실이 보도됐다.

빌린 돈이거나 관례적으로 받아온 떡값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모르는체 눈감고 있으며 판사들은 "검찰도 예외가 아닌데 왜 우리한테만 초점을 맞추느냐" 고 불만이라고 한다.

치대교수 집에서 몇만달러 현찰과 금거북 등 일반인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물건들이 나왔다.

교수 임용때 뇌물로 받은 것이다.

지방의 한 교육공무원은 '너는 그렇게, 나는 이렇게 부정부패의 장본인이었다' 는 책을 펴냈다.

공금유용.인사비리.공사 (工事) 비리.학습지비리 등 일선의 썩은 교육계를 고발한 내용이다.

며칠전 중소기업사장들의 모임에서 강연 부탁을 받아 참석한 일이 있다.

이들의 공무원에 대한 원성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개혁을 떠들던 현정부 5년동안 일선 현장은 달라진 것이 하나 없다는 얘기였다.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으니 상납할 곳이나 줄이게 새 정부는 공무원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는 과거 여당 부위원장들이 새로 여당이 된 국민회의 의원을 찾아와 집단으로 당적을 옮기겠다는 제의를 했다고 한다.

정치적 이해 때문이 아니라 보호처를 찾기 위해서였다.

식당.자영업 등을 운영하는 지역유지들인데 야당을 해서는 소방서.경찰.세무서.구청 등 관 (官) 의 등쌀에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리해고가 시작됐다.

올해에 1백20여만명의 실업자가 나오며 그 가족을 포함하면 4백만명 정도가 실업의 고통을 곧 받게 돼 있다.

하루 수백개 회사가 부도나고 있고 대기업들도 더 이상 옛날식의 방만한 경영을 할 수 없게 제도화됐다.

근로자와 기업인은 고통을 감수하는데 경쟁력을 외치며 칼자루를 휘두르는 정부나 정치권은 어떠한가.

기업활동에 가장 짐이 돼 온 곳은 정치와 정부부문,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관 (官) 과 정치인들이었다.

기업을 하자니 권한과 힘을 움켜쥔 이들에게 약해질 수밖에 없고 그들을 위해 비자금을 만드니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먹이사슬의 정점에는 변화가 없고 먹이 노릇을 하던 힘없는 근로자나 기업에만 채찍을 든다.

경쟁력은 이 고리를 끊는 데서부터 나온다.

이번 정부조직개편이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결과는 고작 부처 몇개 조정하고 공무원 몇천명 줄이겠다는 약속으로 끝났다.

이들은 새 기구, 새 조직에서 어떻게 하면 다시 과거의 권한과 위세를 누릴까 골몰하고 있다.

부실금융의 원흉으로 지목된 재경원으로부터 금융감독권을 빼앗아 금융감독위를 설치하지만 그 자리에도 역시 모피아 (재경원 마피아) 들이 대기하고 있다.

사법개혁으로 고시 합격자수를 늘리니 희소성으로 인한 기득권이 없어졌다고 관련부처는 합격자를 줄이자는 로비에 열중한다.

정치권 역시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 새 여당이 무슨 경제세미나를 한다고 4대 공 (公) 기업에 몇억원씩을 내라고 요구했다 하니 기업을 봉으로 아는 자세는 여전하다.

국회가 근로자.기업에는 칼질을 하고 정작 자신들이 관련된 정치구조개혁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미적거리고 있다.

이래서는 설득력이 없다.

힘을 쥔 쪽은 예전에 누리던 향응.접대.기득권을 그대로 다 누리고자 하면서 근로자와 기업에 대해서만 고통분담을 하라면 누가 듣겠는가.

실업률이 1% 오르는데 따라 범죄율은 5% 상승한다.

거리로 내몰린 수백만의 실업자들이 "왜 나만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 고 저항할 때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인도네시아 폭동사태가 남의 일이 아니다.

기업의 투명성 못지 않게 공무원과 정치인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공직자윤리법.공직자 재산공개 등 여러 장치는 있으나 왜 비리관행은 계속되는가.

떡값이니, 골프접대니, 명절선물을 당연히 생각해서는 안된다.

공직자의 윤리도 국제 수준의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조치들이 약자의 희생을 통한 강자들의 잔치 벌이기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문창극<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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