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쇼트트랙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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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나라 사람이 스케이트화 (靴) 를 처음 소유한 것은 1908년 5월26일이었다.

그보다 약 4개월 전인 2월 초하루 평양의 대동강에서 일본인들이 처음 빙상대회를 열어 스케이트를 신기해 하던 중이었다.

때마침 서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캐나다인 선교사 길레트가 귀국하게 돼 가구와 함께 스케이트를 경매에 내놓았고, 현동순 (玄東淳) 이란 사람이 이를 사들인 것이다.

스포츠로서의 스케이팅이 18세기 후반부터 발달하기 시작했고 보면 스케이트의 보급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그리 늦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스케이팅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겨울 스포츠는 발전이 더뎠다.

기후나 지리적 조건이 적합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겨울 스포츠는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스키는 2차세계대전 이후까지도 한동안 '사치의 극치' 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세계규모의 대회가 열리기만 하면 으레 알프스 주변의 국가와 미국.캐나다 등 몇나라만이 단골이었고, 제3세계 등 가난한 나라들은 '부자나라들의 잔치' 라며 등을 돌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자나라' 에 낄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이다.

48년 스위스 생 모리츠에서 열린 제5회 겨울올림픽 이래 꾸준히 참가했지만 메달은 요원해 보였고, 모두들 한국팀이 메달을 따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92년의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에서 쇼트트랙의 남자개인 1천m와 남자 계주 (繼走) 5천m 두 종목의 금메달을 따내면서 한국은 '쇼트트랙의 나라' 로 불리기에 이르렀다.

쇼트트랙이 알베르빌 대회때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는 점이 우리로서는 각별한 의미를 가질 만하다.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리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석권을 목표로 몇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기 때문이다.

여건이 아무리 나쁘더라도 사전 대비에 소홀함이 없다면 반드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 것이다.

나가노 겨울올림픽의 쇼트트랙 남자 1천m와 여자 계주 3천m에서 따낸 두개의 금메달도 심각한 경제난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 값진 쾌거였다.

'하면 된다' 는 신념은 쇼트트랙에만 적용시킬 일이 아니다.

다른 종목에서도 똑같은 정신자세로 임한다면 한국은 '겨울 스포츠의 나라' 로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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