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도예가 백운 조만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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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7개월동안 혼신을 다 바쳐 빚어낸 도자기 5백여점을 가마에 넣었다.

정성을 다해 사흘동안 불을 지폈다.

결과는 비참했다.

'물건' 으로서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은 40여점에 불과했다.

도예가 백운 (白雲) 조만호 (趙萬鎬.55) 씨. 그는 뒤뜰 한켠에서 4백여점의 도자기를 미련없이 깨트리면서 "언젠가 선조들이 구워낸 청자를 꼭 빚어내고야 말겠다" 고 말했다.

전남화순읍에서 동면쪽으로 10여분간 차를 몰고 가다 백용마을쪽으로 좌회전해 농로와 벼랑길을 2㎞쯤 달리면 아담한 기와집 백운도예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면적 5백50평에 청.백자.분청사기를 빚어내는 공방 3곳, 소나무와 참나무로 불을 지피는 5칸짜리 재래식 터널가마 (등요) , 작품 및 자료실이 자리잡고 있다.

고미술업계에 종사하다가 비색 (翡色) 청자에 매료돼 30대 후반 늦깎이로 도예의 길로 뛰어든 趙씨가 이곳 산골에 터를 잡은 시기는 80년대초. 누구의 도움도 없이 기후와 온도에 민감한 전통 재래식 터널가마로 도자기를 구워 보았으나 10여년 동안 수천번의 실패만 거듭했다.

청자의 빛깔을 재현해 보고자 전국을 돌아다니며 박물관을 찾고 관련서적을 구입하느라 수억원대 재산도 탕진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90년대 들어 한국전승공예대전에서 특별상 (인간문화재 심사 대상) 을 수상하는 결실을 얻었다.

일년에 한두번 굽는 가마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는 1백여점. 이중 90% 이상을 일본인들이 싹쓸이해 간다.

괜찮은 철화매죽문병은 5백만원, 평범한 백자항아리도 1백만원은 받는다.

趙씨는 "투박.담백하면서도 자유로운 상상력을 추구했던 옛 도공들의 혼이 담긴 도자기를 재현해내는 것이 꿈" 이라고 말했다.

광주 = 구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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