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관리, 구조조정, 닌텐도 … 이곳 강연은 한국 경제 풍향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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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삼성 계열사 사장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고 한다. 삼성 제품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쁜 삼성 계열사 사장 40여 명이 반드시 참석하는 모임이 있다.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에서 열리는 삼성사장단협의회다. 지방에서 현장 지휘를 하고 있는 사장도 이날만은 서울 본사로 출근한다.

1시간 남짓 열리는 사장단협의회에서는 사내외 인사의 강연과 내부 토의가 이뤄진다. 특히 강연은 재계의 풍향계 역할을 한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환경·국제정치부터 경영전략까지 주제가 다양한 강연을 보면 삼성의 전략과 재계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지난달 15일 열린 사장단협의회에서는 닌텐도를 배우자고 했다. 같은 날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닌텐도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직접 일본 본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삼성이 서울 서초동 사옥으로 옮긴 지난해 11월 이후 22회의 사장단협의회가 열렸다. 강연이 없었던 1월 첫째 주를 제외하면 21번의 강연이 열렸고 강사 가운데 9명이 외부 인사였다. 외부인사는 대부분 교수이거나 연구원장이었다.


◆위기 땐 브랜드 관리 관심 =지난해 11월 삼성은 본사 건물을 서울 태평로에서 서초동으로 옮겼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던 때다. 삼성이 본사 건물을 옮긴 뒤 연 첫 번째 사장단협의회의 주제는 브랜드였다. 박찬수 고려대(경영학) 교수를 초청해 ‘전략적 브랜드 관리’라는 주제로 강연이 열렸다. 세계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브랜드가 곧 경쟁력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표 참조). 그 다음주에도 계열사의 브랜드 가치 제고 방안이 논의됐다.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은 강연에서 “앞으로 브랜드 마케팅은 소비자의 감성을 붙잡고 소비자와 호흡하는 친근감이 강조될 것”이라고 밝혔다.

◆구조조정·노사관계 연구 =올 1월 삼성엔 위기감이 돌았다. 대표기업인 삼성전자가 지난해 4분기 1조원에 가까운 영업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삼성은 계열사 사장의 절반을 바꾸고 삼성전자는 본사 인력 1400명 중 1200명을 현장으로 배치했다. 사장단협의회 강연 내용도 구조조정 성공사례(김순택 삼성SDI 사장)와 바람직한 노사관계(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으로 바뀌었다. 김순택 사장은 삼성SDI가 디스플레이 회사에서 에너지 사업자로 성공적으로 사업 구조조정을 한 사례를 발표했다. 김영배 부회장은 노사 문제에 대한 경총 입장을 설명했다.

◆몽골서 배우고 닌텐도 벤치마킹 =삼성은 깜깜하던 연초 전망과 달리 기업 실적이 조금씩 호전되자 강연 내용도 위기 극복 사례에 초점이 맞춰졌다. 김호동 서울대(동양사학) 교수는 ‘몽골 세계 제국의 역사’에 대해 강연했다. 김 교수는 인구 70만~100만 명에 불과하던 몽골이 13세기 대제국을 건설한 원동력으로 ▶제국을 공유한다는 개념 ▶이민족에 대한 포용력 ▶정복 지역 문화를 존중하는 본속(本俗)주의를 꼽았다.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은 ‘글로벌 선진 기업에서 배우는 위기경영’에서 “재무 유연성과 소프트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을 초일류군으로 볼 수 있다”며 “여기에 포함되는 회사는 닌텐도와 애플뿐”이라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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