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즐겨읽기] ‘오렌지 페코’에서 오렌지 향이 안 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홍차, 느리게 매혹되다

  최예선 지음, 모요사
356쪽, 1만3800원

차의 풍부한 맛과 향기, 맑고 깨끗한 색을 읽을 수 있게 우려낸 ‘책 한 잔’이다. 분명 많이 마셔봤는데도 생각보다 차에 대해 모르는 게 많을 테다.

‘오렌지 페코’를 주문했는데 오렌지 향이 아닌 데에 당황한 적도 있을 것이다. 중국서 차를 수입하던 네덜란드 상인이 상관 오렌지 공(公)의 이름을 붙였을 뿐, 사실은 ‘작은 새순 잎’을 뜻하는 명칭일 뿐인데 말이다.

SFTGFOP라는 암호가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싹이 포함된 최상급(슈퍼 파이니스트 티피 골든 플라워리 오렌지 페코)을 뜻한단 사실을 알면 더 재미있다. 이렇듯 찻잎 종류부터 다기 다루는 법, 차를 우려내는 팁, 그에 알맞은 쿠키·케익·마카롱까지 한 번에 훑을 수 있는 ‘홍차 지침서’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차를 하루 7, 8잔 정도 마신다고 한다. 얼리모닝티, 브렉퍼스트티, 오전 10~11시에 마시는 일레븐시스, 런치티, 애프터눈 티….

일반 회사에서도 티를 두둑히 쌓아두고 직원들의 티타임을 격려한다는데, 그 여유 반의 반이라도 나눠가질 순 없는 걸까. 말린 찻잎이 수북이 담긴 주전자에 따뜻한 물을 가득 채운 후 촉촉해진 찻잎이 이리저리 살랑거리는 것을 들여다보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깊고 진한 향, 쌉쌀한 고유의 맛도 일품이지만, 설탕이나 고소한 우유를 살짝 첨가해도 좋겠다.

지은이는 미술사를 공부하러 프랑스로 떠났다가 홍차와의 사랑에 빠져버렸단다. 자신이 소장한 온갖 차종을 브랜드와 국적, 맛에 따라 꼼꼼하게 소개하며 국내외 추천 찻집, 유명 브랜드 프로파일까지 공개했다.

알록달록한 티백·상자, 바라만 봐도 달그락거리는 듯한 찻잔 세트 사진들도 멋스럽다. 차 한 잔이 생각나는 주말이다.

홍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