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미국식 경영 '과외'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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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현대와 삼성그룹은 최근 제너럴일렉트릭 (GE) 코리아 사장과 임원을 초빙, 그들의 경영기법에 대해 강연을 들었다.

LG.금호 등 내로라하는 다른 국내 대기업과 포철.한국중공업.능률협회 등도 지난해 말부터 잇따라 비슷한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미 GE의 한국현지법인인 GE코리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로부터 강연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면서 "주로 한국과 미국식 경영방식의 차이점 등에 대한 질문이 많다" 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금호그룹에서 열린 강연회에서는 그룹 임원들로부터 ▶선단식 경영의 문제점 ▶파이낸스 조직의 차이점 등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IMF 사태 이후 한국식 경영의 효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면서 미국식 경영을 벤치마킹하려는 움직임이 재계에서 확산되고 있다.

현대전자는 지난해말 부장급 이상 간부를 미국 휴렛팩커드 (HP) 사에 보내 마케팅.구매.인사 등에 대해 벤치마킹했으며 SK는 미국기업의 품질관리 운동인 '6시그마' 를 배우기 위해 모토로라의 사례를 연구중이다.

이 운동은 '1백만개의 생산품 가운데 불량품을 3개로 극소화하기 위한 선진 품질관리 방법' 으로, SK의 품질관리 담당자들은 모토로라사를 방문해 현장교육까지 받고 있다.

미국식 경영기법을 실제로 기업경영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삼성과 LG는 미국기업들이 조직의 스피드화를 촉진하는데 활용하고 있는 워크아웃 (Work - Out) 기법을 올해중 주력 계열사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즉결식 회의체' 라 불리는 이 기법은 사업연구→보고서→기안→부장→임원→대표로 이어지는 기존의 결재스타일에서 탈피하자는 것. 이는 검토대상이 생기면 관계자들이 모인 회의를 통해 충분히 검토한 뒤 바로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서류작업과 각 결재단계를 줄여 의사결정을 보다 신속히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철은 미국기업들이 현금 흐름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사용하는 '현금중시 회계관리 방법' 을 최근 도입했다.

CVA (Cash Value Added) 란 이 방식은 최근 국내 기업들이 중시하고 있는 경제적부가가치 (EVA=세후이익 - 자본비용) 위주의 경영방식에 비해 현금 유동성을 훨씬 정확하게 분석.전망할 수 있는 기법이다.

한편 효성은 미국 매킨지컨설팅사의 조언을 받아 얼마전 미국식 지배인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지배인 (매니저) 이 해당사업에 대해 권한과 책임을 지는 제도로, 사업담당별로 책임자가 나뉜 미국기업 조직을 본뜬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박기우 수석연구원은 "90년대 들어 미국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혁신적인 면모를 보임에 따라 한국뿐 아니라 많은 외국기업들이 이를 뒤따르고 있다" 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기업은 IMF 권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국제적 신인도가 하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생존차원에서도 미국식 경영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경제에 익숙지 않은 국내 기업들이 미국식 경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우리 환경에 맞도록 승화시켜 나름대로의 경영방식을 개척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영수.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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