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한국百景]4.폐차장에서…이 시대의 잿빛 자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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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60년대에 '라이프 (Life)' 지 (誌) 나 '루크 (Look)' 지에서 미국의 폐차장 사진들을 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물 덩어리들이 마구 쌓여 있는 광경이 일견 을씨년스럽고 살풍경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한켠으로는 초콜릿이나 버터 맛처럼 풍요한 미국 사회의 부 (富) 를 대변하는 모습으로도 다가왔다.

온 나라가 경제개발을 부르짖으며 산업화 열기로 부산스러운 가운데서도, 개천가로 줄지어진 판잣집, 덜덜거리며 달리는 '깡통버스' , 시레이션 깡통 등 아직도 전후 (戰後) 의 어수선함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그 때로서는 미국의 거대한 폐차장 모습이 그네들 영화에서 십대가 자동차를 타고 데이트하는 장면처럼이나 낯선 딴 세상이요 부러움의 대상일 수도 있었다.

안락하고 경쾌하나 너무 가볍고 속되어 보이는 그들의 대중문화에 대해 저어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없지는 않았지만. 세월이 변하여 어느새 우리에게도 자동차가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다.

공장에서는 한 해에 일이백만 대씩 자동차를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고, 그 바람에 일천만 대의 자동차가 이 땅 곳곳을 누비게 되었다.

비록 셋집에 살 망정, 저녁마다 이웃과 주차 시비로 목청을 높일 망정 자동차는 없어서는 안 될 기본조건이 되었다.

자동차는 오늘 우리를 삼키고 있는 편의주의와 '빨리빨리' 주의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으로서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자동차는 우리의 일생과도 닮았다.

하루에 수천 대씩 반짝거리며 새롭게 태어나는 자동차가 있는가 하면, 하루에 또 수백 대씩 빛바랜 모습으로 목숨을 잃는 자동차들이 있다.

고고물이 다 된 헌 차는 마지막 숨을 거둘 때 폐차장으로 모여든다.

폐차장은 자동차들의 나름대로 품위와 격식을 갖춘 장례식장인 것이다.

더러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의 장례식 비용을 아끼느라고 마치 고려장을 치르듯이 한적한 뒷골목이나 들, 산길에 차를 내다버려 볼썽사나운 광경을 만들기도 한다.

고물 자동차들이 납죽 찌그러진 채로 마구 뒤엉켜 있거나 부서지고 내장을 드러내고 녹슨 채로 아무렇게나 쌓여 있어서 음산하고 우울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지만, 그래서 도시 외곽으로 저만치 쫓겨가 있지만, 폐차장은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의 거울이기도 하다.

60년대 미국의 폐차장에서 미국의 생활상을 읽었듯이, 오늘 우리의 폐차장에서 좋게든 나쁘게든 과거와는 크게 바뀐 우리의 삶을 읽는다.

또 한때 힘좋게 달리는 것이 한갓 쇳덩어리로 영락한 모습에서 삶의 유한함과 영고성쇠 (榮枯盛衰) 를 상념하기도 한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어도, 버려진 폐차더미에서 그 그로테스크한 질서와 혼돈을 바라보며 파편화되어 가는 현대적 삶의 이미지를 발견하고 비장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성도 있다.

굳이 어느 외국 작가의 폐차더미로 이루어낸 설치미술 작품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폐차장은 그대로가 거짓없는 삶을 이야기하는 예술작품인 것이다.

예술행위와 그 작품이 인생의 진면목을 찾으려는 구도의 과정이며 결실일진대, 그 어떤 설치미술가의 작업장보다도 예술의 참모습에 가까이 다가간, 살아 숨쉬는 전람회 공간인 것이다.

폐허가 없는 땅은 추억이 없는 땅이요 추억이 없는 땅은 역사가 없는 땅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렇다.

따뜻하고 감미로운 추억과 가슴아프고 반성 어린 상념을 안은 채 묵묵히 있는 폐차장은 엄연한 우리의 역사이다.

사진·글 주명덕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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