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예비구성작가의 깨어진 꿈…방송사 구조조정으로 사외직원부터 감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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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 1월말 KBS TV1국의 자료조사원 박모 (24) 씨는 해고통지를 접했다.

KBS에서 전사적인 제작비 30% 감축 원칙에 따라 작가 밑에서 수습작가로 자료를 조사하던 외부인력부터 정리에 들어갔기 때문. 지난 해 10월 방송작가의 길로 들어섰을 당시의 기쁨과 설렘이 채 가시지도 않은 3개월만의 해고에 박씨는 “참담할 뿐” 이라며 못내 허탈해 했다.

박씨는 “월 보수 50여만원을 받고 하루 12시간동안 자료조사, 현장답사, 섭외 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방송국 일이 좋았으니까요” 라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Y대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단지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고 싶어서” 일시불로 2백만원이 넘는 수강료를 대며 1년여의 작가수업 끝에 방송사에 입성했지만 대본 한 줄 써보지 못한 채 꿈을 접어야 하는 비정한 현실. 박씨가 밝힌 방송구성작가의 현주소다.

방송사 구조조정 바람으로 경비 절감이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교양.예능 분야에서 활동하던 방송작가 등 사외 직원이 우선 감축대상에 오르고 있다.

현재 KBS에서 진행되는 방송작가 감축 규모는 교양방송작가 협회에 등록된 1백5십여명의 회원 가운데 보조작가 1백여명 및 자료조사원 60여명에 TV2국 예능프로 자료조사원 30여명, 라디오의 경우 FM.AM의 대본작가 및 스크립터 40여명 등 2백5십여 명에 달한다.

이미 일부 보조작가.자료조사원 수를 줄인 MBC도 지난달 25일 경영혁신팀을 구성, 제작비 절감을 포함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3월 개편 전에 시행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보조.섭외 작가 등의 대량 방출이 예상된다.

CBS는 지난 1월 중 작가 전원을 방출, 기획과 대본, 진행을 PD와 MC가 도맡게 됐다.

해마다 KBS방송아카데미 90명, MBC아카데미 1백40명, SBS 방송아카데미 1백20명 등 방송교육단체에서 배출하는 예비 구성작가는 1천명을 훨씬 넘는다.

등록 전 서류심사와 면접 등에서 나타나는 평균4~5대1의 경쟁률로 봐선 구성작가 지망생의 규모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방송작가가 누리는 높은 인기에 대해 작가 차윤희씨는 “전문성을 살릴 수 있고 능력급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 고 풀이했다.

하지만 어수선한 방송사 사정으로 인한 예비작가의 불안한 입지는 당장 2월 등록을 앞두고 작가교실 합격자의 등록포기로 이어져 아카데미마다 평균 20%의 미등록률을 보이고 있다.

KBS교양작가실장 김정희씨는 “보조작가의 영역까지 맡다보니 업무량 폭증으로 프로그램 기획단계부터 윤곽이 안 잡히는 경우가 많다.

이 상황이 언제까지 가게될지 모르겠다” 며 “방송사의 구조조정이 효율보다 당장 눈에 띄는 실적위주로 치닫는 건 제살깎기에 불과하다” 며 우려를 표했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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