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뉴욕협상-지피지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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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뉴욕으로 향한 외채협상단의 각오가 비장하다는 보도를 현지에서 접하면서 착잡함을 감출 수 없었다.

협상은 냉정한 머리싸움이며 감정은 일을 그르치기 쉽기 때문이다.

협상단은 우선 '왜 뉴욕인가' 하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에 물린 돈으로 치자면 협상장소는 도쿄 (東京) 나 런던이 돼야 할 것 같고 국제통화기금 (IMF) 도 워싱턴에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제투자자금이 뉴욕을 통해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엔 IMF가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시장경제' 가 있음을 읽어야 한다.

메릴린치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브루스 스타인버그는 "아시아 위기는 90년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은 시장경제로의 적응에 실패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고 진단한다.

뉴욕에서 만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음모설' 을 추궁했지만 한마디로 '노' 였다.

둘째, 시장을 알아야 한다.

채권단에서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10%이상의 금리가 지나치다고 주장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한국에 대한 신용등급이 부당하다고 말하려면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나 무디스의 평가시스템의 약점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펀드 매니저들간에 신용등급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는 사실도 적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이번 금리결정의 기준이 될 산업은행.포철.한전 등에 대한 가산금리가 지난 1년동안 무슨 이유로 어떻게 움직였는가도 소상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이 러시아나 칠레와 다른 근거를 조목조목 준비하라는 얘기다.

이러한 사안을 대표단이 머리에 넣고 있지 못하다면 필요할 경우 도움을 청할 국내외 전문가들을 24시간 대기시켜 놓아야 한다.

셋째, 협상 당사자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미국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장사를 배운다.

유치원에 막 들어간 어린애가 길 모퉁이에 앉아 레모네이드를 파는 것이 미국이다.

2천달러짜리 중고차를 팔면서 1달러까지 흥정하는 사람들이다.

채권은행들의 입장이 다름을 간파하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할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결국 철저한 역할분담과 전략.전술을 짠 후 예행연습을 수십번 반복해야 한다.

그러나 뉴욕에서 들리는 소리는 협상단중 누구는 막판에 합류했고 누구와 누구는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들 뿐이다.

월가 (街)에서 한국에 대한 인상이 선거 후 급속히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은 '부도를 내긴 너무 큰 나라' 라는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꿰어 '작품' 을 만드느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전문성' 이 필수적인데 과연 이를 확보하고 있는 것인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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