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지 않은 고기로도 전염된단 증거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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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04면

국내 첫 확진 환자가 확인되면서 국민의 걱정이 더욱 커졌다. 주의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도 좋지 않다. 신종 플루의 위험성과 예방법을 문답으로 풀어봤다.

Q&A 돼지고기 먹어도 되나

Q: 신종 플루에 걸리면 얼마나 위험한가.
A: 아직 아무도 단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그다지 치명적인 질환으로 보긴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삼성서울병원 박승철(건강관리과) 교수에 따르면 전염병이 세계적인 대유행을 일으키려면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신종이고 ▶전염력이 강하며 ▶독성이 강하고 ▶백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종 플루의 경우 외형적으로 볼 땐 네 가지 조건에 모두 맞는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독성이다. 중증 환자나 사망자가 얼마나 높은 비율로 생기느냐 하는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멕시코에서 수천 명이 감염돼 수백 명이 사망해 사망률이 10% 정도다. 21세기 들어 유행했던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감염자의 사망률이 10%, 조류 인플루엔자(AI)는 60%였던 것과 비교해 치명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한때 17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던 멕시코 사망자는 멕시코 정부가 추정 상태에서 발표했던 것으로 신뢰성이 떨어진다. 공식 통계상으론 신종 플루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 발병 사실이 확인된 지 한 달도 안 돼 3개 대륙 15개국에
서 600여 명의 환자가 생기긴 했지만, 사망자는 16명으로 사망률이 2.5% 남짓이다.

Q: 그렇게 추정치와 공식 집계가 차이가 나는 건 왜 그런가.
A: 우선 지금까지의 발병자와 사망자는 모두 멕시코 지역에 국한돼 있다(미국에서 발생한 사망 1건도 멕시코인 아기가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경우다). 이렇게 멕시코에 사망자가 집중된 이유는 우선 발생 지역 위생 상태가 엉망이고, 주민들이 가난 때문에 면역력이 낮고 병원에도 증상이 심한 다음에야 갔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추정치나 공식 통계 모두 믿기 힘들다. 감염자에 대한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감염자가 훨씬 많을 수 있는데 심한 경우에만 발견이 되다보니 실제 사망률은 더 낮을 수도 있다.

Q: 그래도 돼지고기를 먹기는 꺼림칙한데….
A: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삼겹살이건 김치찌개건 얼마든지 먹어도 된다. 미국 에머리대의 전염병 전문가인 필립 브라흐만 박사는 “익힌 돼지고기는 물론 익히지 않은 돼지고기가 신종 플루 전파의 매개체가 됐다는 이론을 제시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김우주(감염내과) 교수도 “지금까지 확인된 국내외 환자 가운데 돼지 접촉으로 감염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며 사람들의 우려를 일축한다.

신종 플루가 처음 알려졌을 때 ‘돼지고기는 71도 이상으로 익혀 먹으라’는 예방수칙을 제시한 것은 감염 경로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단계에서 익히지 않은 고기를 먹지 말라는 일반적 권고안이었을 뿐이다. 돼지고기는 살모넬라균 등 식중독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충분히 익혀 먹는 게 상식이다. 그런 과정에서 돼지고기가 신종 플루의 매개체로 오해됐다.

Q: 그런데 왜 처음엔 ‘돼지 인플루엔자’라고 불렀나.
A: 신종 플루 바이러스를 처음 분리해낸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SI(Swine Influenza)’라고 부른 것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CDC가 ‘돼지’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pig’ 대신 라틴어에서 유래한 ‘swine’으로 쓴 것이다. 의학용어나 학명(學名)에서는 병명에 라틴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 전염병이 돼지에서 유래했다는 증거는 없었다는 점이다. 단지 일반적으로 돼지가 걸리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유전적으로 상당히 가까웠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신종 플루를 규정하는 8개의 유전적 특질 요소 가운데 인간과 AI 바이러스 요소가 한 개씩 섞여있긴 하지만, 6개는 돼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명칭 때문에 각국이 돼지 수입을 중단하고 소비가 주는 등 국제적으로 부작용이 속출했다. 그래서 ‘멕시코 인플루엔자(MI)’나 ‘북미 인플루엔자(NI)’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들도 나왔다. 결국 WHO는 1일 이 전염병의 공식 명칭을 ‘인플루엔자A(H1N1)’로 바꾸기로 했다. 우리 정부도 이를 따르기로 했다. 다만, 언론은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신종 인플루엔자’, 약칭 ‘신종 플루’로 부르기로 했다.

Q: 예방 차원에서 약을 먹는 건 효과가 있을까.
A: 일단 일반인들은 예방 차원에선 먹을 필요가 없다. 다만, 폐렴 같은 합병증이 왔을 때 이를 이겨내기 힘든 노약자나 당뇨병·심장병·천식 같은 만성병 환자들은 의사와 복용을 상의해 볼 수 있다. 일반인들은 손을 비누로 자주 씻고, 코와 입에 갖다 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충분한 휴식과 영양 섭취로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캡슐형 알약인 타미플루는 치료약이지 백신이 아니다.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특히 감염이 의심되는 시점으로부터 이틀 안에 먹어야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미플루 외에도 인플루엔자 항바이러스제인 릴렌자 역시 치료에 이용된다. 정부는 현재 250만 명분의 타미플루를 보관하고 있다.

Q: 약국에 가면 살 수 있나.
A: 전문의약품이므로 구하려 해도 의사 처방이 필요하다. 5일간 복용해야 하고 가격은 2만5000원이다. 건강보험이 되기 때문에 7500원만 환자가 부담하면 된다. 이 약은 그러나 대부분의 동네 약국은 구비하고 있지 않다. 대학병원 앞 대형약국 등에서 구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이마저 힘들다. 릴렌자는 코로 흡입하는 약이다. 증세 시작 48시간 이내에 흡입하는 것이 좋고 5일 동안 흡입해야 한다.

Q: 만약 신종 플루에 걸린 것으로 의심된다면.
A: 즉시 인근 보건소나 검역소에 신고한다. 그리고 가급적 집에 머물면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한다. 병원에 가기 전에 미리 연락을 취해 의료진이 대비할 수 있게 한다. 병원에 갈 때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침할 때는 반드시 티슈로 코와 입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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