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엄숙한 공연, 가기 겁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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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07면

야구장과 클래식 공연장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지난주 영국 런던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이 도시의 대표적인 공연장 ‘사우스 뱅크’ 내의 ‘퀸 엘리자베스 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런던 국제 피아노 콩쿠르의 3차 예선이 열리던 중이었죠.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이날 연주할 3명의 참가자 중 2명의 연주가 끝나자 진행요원으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객석을 가로질러 무대 앞까지 나왔습니다. 꼭 우리 엿장수의 것처럼 보이는 나무 상자를 목에 걸고 말입니다. 상자에 뭐가 있나 봤죠. 떠 먹는 아이스크림이네요. 이 청년들은 적극적으로 청중에게 다가가 ‘호객 행위’까지 하더군요. 야구장에서 맥주통을 등에 지고 다니며 파는 이들처럼요.

클래식 공연장에서는 먹고 마실 것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물론 안 되고, 기침 소리 내는 것도 조심해야만 하는 줄 아셨죠? ‘고상한 사람들만 가는 클래식 공연장이 부담스럽다’는 사람들에게 런던의 공연장은 보여 주고 싶은 풍경이었습니다.

사실 콩쿠르의 예선은 정규 공연에 비해 ‘리허설’ 같은 형식이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야외 공연도 마찬가지죠. 베를린 필하모닉의 유명한 여름 공연, ‘발트뷔네 콘서트’를 보면 가족들이 잔디에 돗자리를 펴고 거의 누운 자세로 음악을 듣습니다. 뉴욕 필하모닉이 ‘미래의 청중’을 위해 매년 여름 여는 센트럴 파크 콘서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을 따라 부르고 박수 치는 모습도 쉽게 찾을 수 있죠. 미국 LA 필하모닉의 단원인 자니 리(30ㆍ바이올린)는 “LA에서는 친구들과 청바지를 입고 클래식 공연장에 간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클래식은 청바지를 입기도 합니다.
물론 완전히 다른 모습도 있습니다.

10회 넘게 공연되는 오페라 작품이 시작하는 날을 외국에서는 ‘갈라의 밤’이라고 하는데, 이날은 그야말로 고상한 청중이 몰려듭니다. 영화제 시상식에서나 볼 법한 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으로 오페라 극장의 4~5층까지 올라가는 진풍경도 볼 수 있죠. 같은 야외 공연이라 해도 오페라 야외 공연에는 여성 청중이 ‘등 파인 드레스’를 입고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로 유럽의 여름 축제에서 볼 수 있죠. 또 예수의 고난을 다룬 수난곡이 연주되는 날에는 청중이 되도록 검은색 옷을 입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도 있죠. ‘브라보’를 외치는 것도 금지되고요.

이처럼 공연장은 각각 하나의 사회입니다. 그 사회마다 각기 다른 규칙이 있죠. 이 규칙만 잘 눈치챈다면 엄숙함에 주눅 들지 않고 공연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봄이 찾아온 5월, 곳곳에서 열리는 야외 공연이나 축제, 강의식 공연 등 변신한 클래식 공연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 마침 서울에서는 클래식을 축제처럼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서울 스프링 실내악 페스티벌’과 ‘서울 국제 음악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답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도 능동에 새로 생긴 ‘숲속의 무대’에서 야외 공연을 5월 5일 엽니다.

A 야구장 같은 공연장 어때요?



중앙일보 문화부의 클래식·국악 담당 기자. 사흘에 한 번꼴로 공연장을 다니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모든 질문이 무식하거나 창피하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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