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 때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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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12면

며칠간 이어진 ‘소풍용’ 날씨에 연휴 기대까지 겹쳐 이래저래 설렌 한 주였습니다. 그렇다 해도 모두가 들뜰 수 없는 것이 우리네 형편입니다. 증시가 폭발적 활황을 보여도 자기가 투자한 주식이 오르지 않으면 즐겁지 않듯 계절이나 주변 정황과 무관하게 우리는 늘 저마다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문제를 풀고, 걱정거리를 더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주변에 적당한 멘토를 구하기 힘든 형편이라면 책도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김성희 기자의 BOOK KEY

『철 드는 철분약』(유키 유 지음, 시공사)도 그럴 때 쓰임새가 있는 책입니다. 철 드는 약이 있을 리 없으니 제목은 단지 말장난이며 실은 일본의 정신과 의사가 상담 경험을 정리한 ‘심리 처방전’입니다. 비슷한 책이 많이 나와 있지만 이 책의 미덕은 일상에서 부딪칠 만한 소소한 문제들에 대해 어깨에 힘 빼고 풀어 가는 ‘가벼움’입니다. ‘화장이 맘에 들지 않아 짜증 날 때’ ‘직장 동료가 회사를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억지로 즐거운 척하기 힘들 때’ 등의 해법을 다룬 책은 많지 않으니까요.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한 분노에 치가 떨릴 때’의 처방을 볼까요. ‘배신당했다’란 말에는 상대를 비난하는 요소가 들어 있지만 과연 ‘배신’인지 살펴보랍니다. 그런 감정 뒤엔 ‘친구라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같은 계약적 사고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답니다. 아니면 상대가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는 ‘허구적 일치성 효과’ 때문이랍니다. 그러니 상대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으면 배신당했다고 여긴다는 거죠. 어렵고 힘들겠지만 상대의 잘못만 탓할 게 아니라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상대방에게 자기 입장을 성실히 전달하라고 지은이는 조언합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했더라면, 혹은 다른 회사에 입사했더라면 하면서 어린 사람을 마냥 부러워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랍니다. 우리가 인생의 분기점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그리 결정적인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을 것이기에 한 번쯤 후회스러운 선택을 했다손 치더라도 모든 것이 가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멋진 선택을 한 번 했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행복한 것도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위로가 되는 이야기 아닙니까.

이 책과 달리 여러 사람이 제공하는 삶의 버팀목을 모은 책도 있습니다. 1950년대 미국 라디오 프로그램 ‘내가 믿는 이것’을 다시 엮어 낸 『라디오 쇼』(제이 앨리슨 외 엮음, 세종서적)입니다. 유명 인사는 물론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신념(신앙이 아닙니다)을 육성으로 밝힌 것인데 그만큼 진솔하게 다가옵니다. 그중 눈길을 끈 것은 미주리주에서 옥수수 농사를 짓는 이의 ‘인생은 절반의 법칙’ 편이었습니다.

그가 믿는 절반의 법칙은 ‘절반은 평균보다 낫지만 나머지 절반은 평균보다 나쁘다’는 겁니다. 물론 수학적으로 그의 믿음은 틀렸습니다.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인생이란 나쁜 것들과 좋은 것들이 곡예하듯 공중제비를 하는 것이어서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날 수 없듯이 평균보다 나쁜 상태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 생각이 그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니 바르지는 않지만 좋은 원칙 아닙니까.

굳이 단숨에 읽으려 애쓸 필요가 없는 책들입니다. 숙제하듯 매일 꾸준히 읽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아쉬울 때 맞는 구절을 찾아 읽으면 힘과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경력 27년차 기자로 고려대 초빙교수를 거쳐 출판을 맡고 있다. 특기 책 읽기.『맛있는 책읽기』등 3권의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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