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동]4.군…'국방부 5인방' 신조어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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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통령선거가 끝난 이틀 뒤 국방부에 근무하는 한 장성은 동기생의 '당선 축하인사' 를 받았다.

광주 K고 출신인 그는 “내가 당선된 것도 아닌데 왜 축하를 받느냐” 고 말했다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동기생들 보다 진급이 늦었지만 이젠 실세가 된 그는 “지금까지 특정 인맥에 힘입어 잘된 사람은 공정한 인사정책에 따라 단계적으로 정리돼야 할 것” 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원부서의 P대령은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진급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요즘 영관 (領官) 장교들 입에선 '국방부 5인방' 이란 단어가 떠나지 않는다.

'군을 이끌 실세 그룹' 이라는 뜻이다.

무기획득에서 인사에 이르기까지 국방부 주요 정책에 이들의 입김이 작용하는 오늘이다.

그러나 이들이 오래전부터 잘 나가던 사람들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같은 지역 출신인 이들은 동기생들 보다 진급이 뒤졌었다.

개중에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예편조치됐다 복귀한 인물도 있다.

하지만 한달 전부터 달라졌다.

이들 주변엔 사람들이 끓는다.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듯 하지만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물씬 배어 있다.

이들 준.소장급 장성들 방에 선후배 군인들이 몰리는 것에 반해 장관실은 한산하다.

김동진 (金東鎭) 장관에 대한 보고 건수도 크게 줄었고 찾는 사람도 뜸하다.

올해의 주요사업에 대한 검토나 결정은 2월 이후로 미뤄둔 상태다.

선거전만 해도 YS정권 군부의 대표주자인 金장관을 만나려는 내방객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요사이는 썰렁할 지경이다.

이젠 金장관 인맥으로 오해받을까 해서인지 부하 장교들조차 발걸음을 멀리하고 있다.

金장관은 최근 군내 분위기가 도를 넘는다고 여겼는지 간부회의에서 일갈했다는 후문이다.

“요즘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장군들이 더러 있다는 첩보가 있다.

영관급보다 장군급이 심하다는데 자제하라” 고 지적했다는 것. 이날 경고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며칠전 외박나온 전방 사단장 S소장이 국방부에 들르기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군부는 '1 - 5' 와 '6 - 5' 인맥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1 - 5' 는 金장관이 지휘했던 1사단과 5군단을, '6 - 5' 는 윤용남 (尹龍男) 합참의장이 지휘한 6사단과 5군단을 각각 뜻한다.

93년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이 '하나회' 군맥을 제거한 뒤 등장한 金장관과 尹의장이 한때 부대장을 지내며 거느렸던 부하들을 중심으로 서로 추천하고 끌어주면서 확고한 인맥이 형성된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당시 국방장관이던 권영해 (權寧海) 안기부장과 金대통령 차남 현철 (賢哲) 씨 인맥이 두텁게 형성됐고 이들은 현재 金장관 및 尹의장 인맥과 얽혀있다.

결국 '문패' 만 바뀌었을 뿐 맥 (脈) 은 여전한 셈이다.

육군의 A대령은 "이른바 신군부의 중심축이 된 이들은 5년간 줄기를 뻗어 국방부.합참의 국장급 이상, 군단장 이상은 대부분 이 인맥에 포함돼 있다" 며 “육군 군단장의 주류를 이루는 육사 24기 8명중 5~6명이 이들의 인맥” 이라고 전했다.

육.해.공 3군을 통틀어 대통령당선자와 같은 지역출신 장성은 소수다.

3성이상 장군으로는 육군에 3명, 공군 1명, 해군 1명뿐. 입교 때부터 적은 탓도 있다.

육군인사에 밝은 B대령은 이런 등등의 이유로 “차기정권이 지난 93년처럼 무자비하게 군인사를 교체하지 않을 것” 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그는 “다만 '1 - 5와 6 - 5' 인맥을 자처하며 관사를 드나들거나 인맥과 종교 등 관계를 내세워 발탁된 장성들부터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참신한 군인사들을 발탁해야 하지 않겠느냐” 고 지적했다.

A장군은 “육본 참모부장급에도 '특정지역' 출신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의도적' 인사는 어려울 것” 이라며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군인사가 자연스레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해.공군도 인사바람을 타기는 마찬가지인데 특히 해군은 사업 때문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해군의 C대령은 “환차손과 예산축소로 당장 잠수함사업 등 해군사업이 다 죽게 생겼지만 현 수뇌부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해군의 입장을 설명할 만한 사람이 없다” 며 안타까워 했다.

해군사업이란 게 대부분 10년을 주기로 하는 것이어서 당장 어렵다고 밀쳐두면 엄청난 후유증이 따른다는 얘기다.

현정권 등장과 함께 된서리를 맞은 하나회의 복권도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다.

지난 5년간 군교육기관.동원사단 연대장 등 한직으로만 따돌려졌던 H대령 (육사 31기) 은 “일부러 줄을 타기 위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모임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강요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면서 새 정부의 탕평책을 기대했다.

이들은 국민회의는 아니라도 여권의 일원인 자민련에 하나회 출신 장성들이 상당수 입당한 사실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하나회 출신 O장군 (자민련) 은 “아직도 하나회 운운 하느냐” 며 “하나회 척결을 외친 뒤 그야말로 정실에 기초한 인맥을 형성한 그룹들을 질책해야 한다” 고 목청을 높였다.

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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