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남북 함께 고구려사 지키자

중앙일보

입력

지난 1일 북한의 '고구려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번에 등재된 문화유산은 평양근교 진파리고분군을 비롯한 다섯개 고분군 63기의 묘로 16기의 벽화고분이 포함돼 있다. 같은 날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수도와 고분군'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내려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가 있다. 우선은 우리 고구려 문화유산이 세계 인류가 함께 기리고 지켜나가야 할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은 199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이후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으며, 이의 보존 관리를 위해 남한은 물론 국제적인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 기뻐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동안 중국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이번의 결정이 '고구려사=중국사'라는 그들의 논리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중국은 이번 등재를 위해 환런과 지안시 일원의 고구려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정비된 유적 공개와 연구 성과 발간을 이번 등재 일정에 맞추는 등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중국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등 중국 언론들은 자국 내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보도하며 '고구려는 중국 고대 소수 민족 정권'이었다고 주장했다. 우려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북한과의 협력이 가장 시급하다. 북한과의 협력은 몇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북한에 있는 유적의 보존관리 문제다. 최근 중앙일보 취재단과 함께 둘러본 북한의 고분벽화 보존대책은 참으로 걱정스러웠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진파리 1호분에는 벽화 보존을 위한 아무런 시설이 없었으며, 일부 벽화에는 석회 종유석이 자라기도 하였다. 이번 등재를 계기로 벽화 보존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

둘째는 남북한의 공동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분단 이후 남북의 학자들은 서로 다른 체제에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고구려사에 대한 인식에 적잖은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또한 고구려 유적 대부분이 북한에 위치해 있는 상황에서 고구려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반쪽짜리 연구에 불과하다. 중국의 논리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의 공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셋째는 남북한 문화재 교류다. 이미 민간 차원에서는 이 분야의 교류가 진행되고 있으며, 2002년도부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와 중앙일보 등의 주관으로 이뤄진 '고구려문화전'이 그 좋은 예다. 그러나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는 한계가 있으며, 정부가 중심이 돼 교류가 이뤄져야할 때가 됐다.

그동안 우리도 이에 대응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지난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구체화된 이후 학계와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 결과 정부에서는 '고구려연구재단'을 설립하는 등 발 빠른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당초 매년 100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겠다던 정부의 입장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올해는 50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고 한다. 재단도 이제 겨우 상근직 연구원을 채용했으나 특정분야에 치우쳤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어렵게 마련된 고구려 연구 붐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끝으로 지금까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국내용에 불과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제 고구려 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고구려사를 지키기 위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고 고구려사가 우리 역사임을 세계인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다.

최종택 고려대 교수.고구려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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