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에서 악연으로 … 노무현-박연차 2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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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64) 태광실업 회장이 최근 서울구치소에서 박찬종 변호사와 접견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같이 설명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친구인 형이 구속되고, 동생인 노 전 대통령까지 검찰 조사를 받게 된 현실에 가슴 아파하고 절망하고 있다”는 것이 박 변호사의 주장이다.

노사모 회원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26일 김해 봉하마을 앞 도로 가드레일에 노 전 대통령 지지를 표시하는 노란 풍선을 설치하고 있다. [김해=송봉근 기자]


20년 인연의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이 파국적 결말의 두 주인공으로 마주 서 있다. 뇌물 수수 혐의 피의자와 뇌물 공여자인 동시에 핵심 증인으로서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67)씨와 먼저 친분을 쌓았다. 그는 1970년대에 태광실업을 노 전 대통령 일가의 고향인 김해에 창업했다. 이때 세무공무원이던 건평씨와 알게 됐다. 건평씨와의 인연으로 정치인 노무현도 돕게 된다. 88년 3월 노 전 대통령이 13대 총선에 부산 동구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선거자금을 지원해 주기 위해 건평씨의 한림면 임야를 4억5000만원에 사준 것이다. 2002년 대선 때도 건평씨의 거제시 구조라리 별장을 10억원에 매입해 줬다.

정치인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은 두 사람 간 ‘밀월’의 시작이었다. 박 회장의 사업은 노무현 정부 때 크게 성장했다. 2005년 5월 박 회장의 계열사가 보유했던 경남 진해시의 옛 동방유량 공장 부지의 고도제한이 완화되면서 부지 매각으로만 330억원대 차익을 얻었다. 또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전후에 주식을 차명으로 거래해 259억원을 벌기도 했다. 이듬해 6월엔 농협의 알짜 자회사로 꼽히던 휴켐스를 당초 예정가보다 322억원 싼 1455억원에 인수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는 30억 달러 규모의 베트남 화력발전소 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화력발전소 입찰 결정이 나기 직전인 2007년 11월 노 전 대통령이 방한한 농 득 마인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에게 “박연차 회장은 내 친구”라고 소개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노 전 대통령은 박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씨를 2004년 1월 중부지방국세청장에 이어 이듬해 6월 국가보훈처 차장, 2007년 4월 국가보훈처장에 임명하기도 했다.

박 회장은 퇴임 직후 봉하마을 사저 건축비 명목으로 15억원을 빌려줬다. 그러나 지난해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무너졌다. 박 회장은 지난해 말 검찰에 구속된 직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진술을 했다고 한다. 그는 “돈 문제는 재임 중 몰랐던 일”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주장을 전해 듣고는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느냐”고 반박했다고 한다.

정효식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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