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하지 농구는 무슨…] 18. 필리핀 선수 오캄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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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국제대회 때마다 교묘한 반칙으로 한국 골잡이들을 괴롭혔던 필리핀의 오캄포(左). 필자가 오캄포의 수비를 뚫기 위해 드리블하고 있다.

한국은 멕시코에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지만 남은 경기를 모두 이겨 도쿄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그러나 16개국이 출전한 올림픽에서는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전패 기록으로 꼴찌의 오명을 써야 했다. 예선을 거치며 선수들이 피로 누적에다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 탓이었다. 특히 단신 센터였던 김영일은 눈 밑이 찢기고, 발목도 삐어 큰 고생을 했다.

당시 아시아 농구의 최강은 필리핀이었다. 필리핀대표팀 주장은 오캄포라는 선수였다. 그는 너무도 나를 괴롭힌 선수였다. 필리핀과는 매년 한두 번은 꼭 만났다. 그때마다 나는 오캄포 때문에 치를 떨어야 했다.

오캄포는 나보다 한살이 많았다. 자주 만나다보니 개인적으로 친해졌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그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오캄포는 항상 나를 마크했다. 심판이 안 보는 데서 하의를 끌어내리는 일은 그의 장기(長技)였다. 얼굴을 맞대는 상황이 오면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다.

처음에는 오캄포의 이런 행동에 분개해 심판에게 항의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오캄포는 뻔뻔한 얼굴로 극구 발뺌했다. 땀 범벅인 얼굴에서 침을 찾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오캄포를 혼내줄 기회가 왔다. 대만에서 벌어진 아시아 4강자 농구 리그전에서였다. 공동 선두를 달리던 한국과 필리핀 간 한판은 치열했다.

오캄포는 역시 나를 전담 마크했다. 오캄포는 마치 나를 괴롭히려고 출전한 것 같았다. 역시 이날도 내 발등을 밟고, 침을 뱉었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내가 골밑을 향해 드리블하다가 슛 동작을 취하려는데 뒤에서 누가 상의를 잡아당기는 듯했다. 순간 나는 창피를 무릅쓰고 앞으로 달려가 슛을 날렸다. 골인이었다. 내 상의는 찢어져 너덜거렸고, 그 바람에 바짝 마른 내 상체는 수천 관중 앞에 드러났다. 나는 멀거니 서 있는 오캄포를 노려봤다. 당황해 쫓아온 심판은 즉시 오캄포에게 테크니컬 파울을 선언하고, 그를 퇴장시켰다. 관중은 내가 유니폼을 바꿔 입고 나올 때까지 오캄포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필리핀팀 벤치는 '김영기 전담 마크맨'의 갑작스러운 퇴장에 낭패한 모습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오캄포를 국제대회에서 자주 만났다. 그러나 내게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의 더티 플레이에 분개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비웃음으로 응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오캄포는 제풀에 지쳤는지 더 이상 침을 뱉지 않았다.

오캄포는 기술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 선수의 성질을 돋워 그가 정상적인 플레이를 못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국내에도 오캄포와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가 있었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후배였다는 것만 밝힌다. 그러나 이 친구에게는 애교가 있었다. 경기 때 예의바르게(?) "선배님, 용서하십시오"하고는 주먹질을 한다. 다음날에는 직장이나 집으로 나를 찾아와 정중히 사과하고 돌아간다. 그러나 또 경기에서 만나면 여지없이 주먹을 날렸다.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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