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 망가지는 통쾌함 … 우리가 보여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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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클래식 공연’을 하는 이구데스만(右)과 주형기씨. 영국의 예후디 메뉴인 음악학교에서 만난 동갑내기다. 주형기씨는 “서로가 지루한 클래식에 염증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이구데스만과 주’라는 팀을 만들어 유쾌한 클래식 공연을 펼친다. 하지만 정통 클래식 공연도 놓지 않았다. 다음달 5일 개막하는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에서 점잖은 연주와 웃기는 공연을 모두 보여줄 예정이다. [‘서울 스프링 실내악 축제’ 제공]

세계 유력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의 80번째 생일 공연에 한국계 연주자가 초대됐다. 에마누엘 액스, 크리스티안 치메르만 등 유명 연주자와 공연할 피아니스트는 주형기(36)씨. 한국계 영국인이다. 음악계의 ‘대선배’ 하이팅크를 위해 그가 연주할 곡은 뭘까.

오스트리아 빈에 머물고 있는 주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제목은 ‘피아니스트의 생각’. 피아노를 치는 동시에 소리내 말하는 거다. ‘객석에서 왜 기침 소리가 나지?’ ‘연습 좀 더 할걸’ ‘배고프다’ 이렇게”라고 설명했다. 이쯤되면 엄숙한 클래식 공연장에서 불경에 가까울 터.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또 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가 연주될 때, 갑자기 피아니스트 한명이 더 나온다. 둘이 서로 자기가 반주자라며 싸우는 거다.” 점잖게 감춰뒀던 음악가들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혹은 조금 과장해서 보여주는 것이 그의 공연이다.

◆음악회는 꼭 엄숙해야 하나?=이처럼 주씨의 연주에는 코미디가 있다.

런던의 명문, 예후디 메뉴인 음악 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교 친구인 알렉세이 이구데스만(36·바이올린)과 함께 ‘이구데스만과 주’라는 팀을 만들어 웃기는 공연을 주업으로 삼았다. 주씨는 “어려서부터 음악을 정말 좋아했지만 딱딱한 분위기 탓에 진저리가 났다”고 기억했다.

◆연주자는 망가지면 안되나?=주씨가 클래식을 비튼다면 그룹 ‘플럭(pluck)’은 부순다. 바이올린·비올라·첼로, 언뜻 보기에 평범한 클래식 실내악단인 ‘플럭’의 무대는 파격 그 자체다. 모차르트 ‘터키 행진곡’을 함께 연주하던 바이올린 주자가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마구 빨라진다. 첼로 주자가 “천천히!”라고 외치지만 더 빨라진다. 급기야 활의 마찰 부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식이다.

실내악단 플럭.

‘플럭’의 리더인 에이드리안 가렛(36)은 전화 인터뷰에서 “멤버 모두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수년간 연주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즐거운 것은 늘 ‘금지’였다”는 것이다. “연주자는 관객의 우상이 된다. 하지만 이들이 망가지면 안되나?” 그는 연주하면서 많이 먹기 경기를 하고, 현을 이로 물어뜯는 등의 ‘금기’에 도전한다. 20년 넘게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던 이들이 무대 위 ‘몸개그’도 서슴지 않는다.

▶이구데스만과 주=5월 10일 영산아트홀, 12일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플럭=4월 30일~5월 17일 마포아트센터 맥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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