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해낸다]1.'IMF체제 원년' 신년기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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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해가 밝았다.

뜬 눈으로 새해 아침을 맞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 앞에 닥친 멀고 험한 길을 과연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을 것이다.

올해는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원년 (元年)' 이다.

IMF체제가 우리에게 던져준 확실한 메시지는 '고통감수' 와 '구조조정' 이다.

고성장을 거듭하던 우리 경제는 이제 마이너스 성장을 감수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

얼마나 희생을 치러야 할지는 모른다.

그저 누구도 무사하다고 장담할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만이 넘실댄다.

나라가 파국의 고비에 처했던 지난 두 달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은 한다.

전국적으로 하루 1백개 이상의 크고 작은 기업이 쓰러지고 매일 4천명의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새해에는 지난 두 달과는 비교조차 두려운 상황이 닥칠 것이다.

본격적인 경제발전의 길로 접어든 후 30여년간 쌓이고 쌓인 모순과 부실들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IMF와 선진국들이 6백억달러 가까운 사상 최대규모의 긴급지원에 나선 대가로 우리는 초긴축, 저성장, 그리고 완전한 개방을 받아들였다.

이는 이제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이를 수행해 가는 과정에서 기업도산과 대량실업은 피할 수 없다.

고물가와 늘어난 세금은 서민들의 어깨를 더욱 짓누를 것이다.

무엇보다 올 한햇동안 1백만명 안팎의 새로운 실업자가 생길 것이라는 각종 연구기관의 전망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올해 우리가 해내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비단 IMF와의 합의내용을 이행하는 정도가 아니다.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은 경제만이 아니다.

금융기관이나 재벌 몇개를 수리한다고 다시 돌아갈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와 상황에 맞지 않는 것으로 판명난 시스템을 아예 새로 만들 각오가 필요하다.

고통감수는 구조조정과 맞물린 과제다.

이 기회에 나라의 잘못된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새로운 도약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고통감수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

구조조정을 위해 고통감수를 피할 수 없다면 이를 슬기롭게 나눠 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 속에 고통을 나눠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리더십의 복원이다.

나라 전체가 아무 대책없이 부도위기로 떠밀려 간 지난 한해를 보내면서 모두가 절감한 것이 바로 리더십의 실종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당선자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다.

정치권 전체가 기업.근로자에 못지 않은 자구노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스스로 정경유착의 뿌리를 잘라내고 비용을 줄여 고통을 나눠 갖는 내부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지난 연말 임시국회에서 보여줬던 책임 떠넘기기나 잇속 챙기기식 행태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정부도 예외일 수 없다.

책임의 크기를 따지면 가장 강도있는 자구노력이 필요한 곳이다.

스스로 작고 효율적인 정부로 거듭나겠다는 각오와 노력만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국민 개개인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고용의 유연성 확대를 '실업' 으로 여기기보다 자기계발을 통해 더 나은 삶으로 옮겨가는 '기회' 로 생각하는 적극적 자세로 바꿔야 한다.

싫든 좋든 우리는 전면경쟁의 상황에 내몰렸다는 것을, 그 경쟁을 이겨내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모두가 직시해야한다.

비록 타율 (他律) 로 맞게 된 개혁과 구조조정이지만 이번이 21세기를 앞두고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천행 (天幸) 일 수도 있다.

우리가 과연 해낼 수 있을지 누구나 두려울 것이다.

망설임이나 불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 한해 땀과 피와 눈물로 우리를 단련시키면 다시는 이런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이제 원점에 다시 섰다고 생각하자. 우리에게 자원이 풍부했던가, 돈이 많았던가.

맨주먹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던가.

'사람' 하나로 일궈낸 나라가 아니었던가.

보릿고개도, 오일 쇼크도 딛고 일어선 우리가 아닌가.

'다시 시작한다' 는 자각 (自覺) 과 '우린 해낸다' 는 자기확신만 있으면 이미 절반의 성공은 기약된 것이다.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손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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