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이 어릴 적 천연두를 앓은 흔적으로 눈썹이 세 갈래로 갈라져 ‘삼미자(三眉子)’라고 스스로 칭했다는 기록, 방대한 독서량과 저술로 인해 시력이 약해졌다는 기록 등을 참고했다. 특히 조선시대 인물을 그린 초상화로선 이례적으로 안경을 쓴 모습으로 그렸다. 고증에 참여한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당시 안경이 보급돼 있었고 ▶다산은 볼록렌즈를 이용해 바늘구멍 사진기 실험을 했을 정도로 신문물에 밝았으며 ▶시력이 악화됐으니 안경을 썼을 것으로 추론한 걸 근거로 삼았다.
김 화백은 “기록을 참고했을 뿐 아니라 나주 정씨 후손 300여 명을 만나 다산의 모습을 추론했고, 공예사 전공자에게 당시 유행한 무소 뿔 안경을 재현하게 해 그려넣었다”고 말했다.
특히 “초상화 속 다산이 입고 있는 쪽빛 두루마기는 강진 근처 땅 1만6000여㎡(약 5000평)에 쪽 농사를 지어 추출한 안료를 거의 전부 사용해서 빛깔을 냈다”라고 밝혔다. 그는 “쪽에서 나오는 거품을 안료로 쓸 수 있다는 걸 알고 이번에 시도해봤다”며 “이 쪽빛은 고려불화 이후 그림물감으로는 내기가 어려운 색이었다”라고 말했다.
월전 장우성(1912∼2005) 화백이 그린 다산의 표준영정은 다산의 생가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기념관에 걸려 있다.
그간 이 작품의 사진 복제본을 다산초당에 걸어뒀던 전남 강진군의 의뢰에 김 화백은 사료와 전문가 고증 등을 거쳐 새 초상화를 내놨다.
글=권근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