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건국사는 긍정과 성취의 역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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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학생운동을 했고 지금은 보수 여당의 3선 중진 정치인이 된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 대학 시절부터 그는 해방 공간 주요 인물들의 역할과 평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원 의원의 평가는 명쾌했다. 이 전 대통령이 주도한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는 긍정과 성취의 역사로 봐야 한다는 것. 원 의원은 ‘역사적 과제를 헤쳐온 시대의 지도자’라는 측면과 ‘개인 지도자 스타일의 한계’는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를 ‘유공유과’(有功有過·공도 있고 과도 있다)’라고 표현했다.

-이 전 대통령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건국의 아버지가 이승만 전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누가 뭐래도 부인할 수 없다. 1919년 그는 임시정부에서 만장일치로 대통령이 됐다. 45년 해방 이후 인공을 선포하며 좌파도 그를 주석으로 추대했다. 해방 후 독립운동 역량을 대표한 그가 초대 대통령이 됐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의 단독정부 노선이 결국 분단을 초래한 것 아닐까.
“단독정부 노선은 분단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로 봐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한 분단통치로 치닫고 있었다. 우파와 중도파가 신탁통치를 반대한 이상 김일성 휘하로 대한민국을 넘길 수 없기 때문에 단독정부는 불가피했다. 48년 단독정부 수립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강화된 반공정부 수립 과정은 우리 현대사에서 긍정과 성취의 역사로 봐야 한다. 물론 그가 중도파를 포용하지 못했다는 것, 장기 집권의 길에 접어들며 같은 우파였던 한민당까지 탄압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 전 대통령이 반탁을 고수했던 것은 해방 공간에서 우익이 자신이 없었던 것 아닐까.
“미·소 공동위원회 관리하에 직접선거를 하면 중도 좌익에 압도적인 지지가 쏠리는 상황이었다. 우익은 친일파라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익이면서도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이승만과 김구 정도인데 좌익에 비해 극히 취약했다. 김일성에게 주도권이 갈 수 있는 것을 극단적으로 박차 버림으로써 그는 역전의 기회를 잡았다. 반탁을 통해 복잡한 세력관계를 일거에 정리하고 국민 역량을 결집해 정부를 출범시킨 것은 이승만다운 판단력이었다.”

-친일파를 철저하게 청산하지 못했던 점은 비판받아야 하지 않을까.
“역사에서는 100% 최선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친일파를 청산하고 국가의 역량을 끌고 가기에는 공산주의라는 적 때문에 한계가 많았다. 물론 그게 정당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친일파 숙청이 잘 안 됐다고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지적은 단편적인 시각이다. 토지개혁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지만 지주계급을 많이 해체했다. 그러다 6·25를 거치면서 일제시대의 물적 기반이 해체되고 급격한 사회 변동이 있었다. 그게 60∼7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의 토대가 됐다.”

-이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북진통일론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나.
“현실적이지 않다. 중국이 가만 있겠나. 6·25 때도 우리가 38선을 넘는 순간 중국은 비밀리에 청천강까지 들어와 있었다. 중국 개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군사적 수단을 쓰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중장기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북한의 민심을 얻고 북한 지배층 사이에 친대한민국파를 만들어 끌어당길 수 있는 강온책을 구사해야 한다. 남한 체제라도 지켜야 한다는 이승만식의 방어적인 반공 자유민주주의에서 이제는 한반도를 변화된 국제정세 속에서 볼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진정한 대한민국 보수 우파에게 필요한 관점은 북한을 관리할 수 있는, 주도적 관점의 포용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대로 가면 북한은 중국의 동북 4성이 돼 버릴 수 있다.”

-우리 정부의 공식 방안인 단계적 통일론이 공산주의자에게 휘말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남북 체제를 뒤섞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남북 예멘에서 보듯 실질적인 주도권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로부터의 형식적 통일은 재앙이 될 수 있다. 리얼리스트(realist)로서 (북진통일을 주장한) 이승만의 현실인식은 그런 면에서는 유효하다. 하지만 국가연합이라는 개념 안에서 사회ㆍ경제적 교류가 계속되면 바람이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흐르듯 주도권은 남측이 쥘 수밖에 없다. 북·미 수교가 이뤄지고, 극단적인 선군정치를 하는 김정일 정권이 물러나면 변화의 속도가 의외로 빨라질 수 있다.”

-학생운동 시절과 지금, 원 의원의 이승만관에 변화가 있나.
“학생 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외교론에 입각해 승리했지만 친일파 청산과 농지개혁에 철저하지 못했고 민주주의를 짓밟았다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는 좀더 그의 고민을 이해하게 됐다고 할까. 어쨌든 우리 건국의 역사를 반쪽만의 역사라거나 이 전 대통령이 건국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식의 생각에는 단 한 번도 동조해 본 적이 없다.”

윤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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