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잡한 김영삼대통령 '내키지 않은' 담화…"책임회피" 여론에 밀려 결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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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이 정말 내키지 않은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금명간 대 (對) 국민 담화를 발표키로 한 것이다.

金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경제난 극복 담화' 이름으로 국제통화기금 (IMF) 자금 요청에 대해 "송구스럽다" 고 말한 바 있다.

그때도 金대통령은 한보사건 이래 "툭하면 사과 담화냐" 는 비아냥이 거슬렸지만 아태경제협력체 (APEC) 회의에 가기 위해 별 수 없었다.

그런데 다시 담화문을 내야 하니 金대통령의 답답한 가슴은 터질 지경이라고 참모들은 말한다.

그런 이유로 당초 청와대는 담화에 부정적이었다.

담화문을 내봤자 국민들이 거들떠 보지 않을 것 같아서다.

그렇지만 경제파탄 책임론을 金대통령이 회피한다는 여론이 아무래도 걸렸다.

더구나 청와대.재정경제원.한국은행 사이에 책임을 떠미는 '네탓 시비' 가 일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9일 "金대통령은 그런 문제들도 담화로 정리할 필요성을 느껴 마음을 바꿨다" 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으며, 지금은 누구를 문책하기보다 IMF 후속조치 마련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책임문제가 몰려오는데 불만이다.

10월말 이후 金대통령에게 10여차례 외환위기를 보고했지만 묵살당했다는 한은측의 주장에 대해 청와대는 "문책을 피하려 딴소리한다" 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한은이 금융개혁법 통과를 막으려고 국회에서 농성해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결정적 잘못을 저질러놓고 외환부족에 뭘 고민했다는 말이냐" 고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이경식 (李經植) 한은총재에 대해 이 당국자는 "물러난 경제팀 (姜慶植부총리.金仁浩경제수석) 과 공동 책임이 있다" 면서 "임기제여서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거취는 알아서 할 일" 이라고 자진사퇴를 바랐다.

'金대통령이 사죄하라' 는 한나라당의 신문광고도 섭섭하다.

金대통령은 7일 TV토론에서 이회창 (李會昌) 후보가 자신을 질타하고 광고까지 낸데 대해 "착잡해 하더라" 고 다른 당국자가 전했다.

청와대는 이런 분위기가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

金대통령이 딴데다 책임을 미루려 한다는 얘기가 나올까 봐서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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