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신속한 대응…종금사 '줄도산'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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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자금시장이 실종됐다.

금융기관간 돈거래가 중단되고 금융기관들이 각자 급전을 구하러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상황을 과연 금융시장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금융기관끼리 주고받는 콜자금은 금리만 법정최고한도까지 오른 채 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장 오늘 돈을 구하지 못하면 부도위기에 몰리게 된 종금사와 일부 증권사들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다.

정부와 한은이 내놓은 대책에는 알맹이 있는 내용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시장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관련부처와 긴밀히 협조해 신속히 대처하겠다" 는 대책은 차라리 발표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게 금융계의 반응이다.

지금 당장 구체적인 조치가 나와도 시원치 않을 판에 무슨 한가한 소리냐는 얘기다.

지난 주말 종금사들은 정부와 한은의 종용으로 은행권으로부터 급전을 받아 대량부도사태를 간신히 넘겼다.

그러나 주말을 넘긴 8일에는 다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근본적인 해법이 나오지 않는 한 이런 양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게 뻔하다.

종금사의 한 자금담당자는 "정부의 즉각적인 대책 없이는 금융기관이 줄줄이 도산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다" 고 단언한다.

증권.종금이 다 망하고 은행이 거덜난 뒤에 국제통화기금 (IMF) 의 구제금융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신용불안의 발단을 9개 종금사에 대한 대책없는 영업정지와 그에 따른 예금인출사태에서 찾는다.

언제 넘어갈지 모르는 종금사에 돈을 퍼줄 은행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가 아무리 강권해도 말로 될 일이 아니다.

고객의 예금인출은 계속되고 은행으로부터의 돈줄마저 끊긴 종금사들이 부도위기에 몰리는 건 당연하다.

콜거래의 중단은 바로 이같은 신용붕괴의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한은은 콜자금을 대주라는 공허한 말놀음뿐이니 실종된 시장이 제대로 살아날 리 없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하루에 결제해야 할 자금을 5조원규모로 추산한다.

이가운데 신용이 떨어지는 금융기관들이 자력으로 조달하지 못하는 부족자금이 지난주 2조원에서 최근에는 3조원이상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예금인출이 현재 추세로 계속된다면 부족자금은 하루에 5천억원이상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자금난에 몰린 일부 종금사에서는 이제 현금이 부족해 고객의 예금인출 요구에도 제대로 응하지 못하는 사태마저 빚어지고 있다.

설사 은행권의 손목을 비틀어 콜자금을 대준다고 해도 과연 언제까지 이런 파행적인 금융행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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