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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관이 애들 장난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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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07면

#1. 뮤지컬 제작자들은 전용관만이 살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원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뮤지컬이 영화와 다른, 가장 근본적 속성은 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영화는 필름을 복제한다. 그러곤 “전국 600개관 동시 개봉”이란 식의 홍보 문구를 뿌려댄다. 단기간에 많은 영화관을 점령해야 하는 ‘공간과의 싸움’이 영화다.

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반면 뮤지컬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복제할 수 없으니 한 군데서 오래한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이 20년 넘게 롱런하는 이유다. 그러기에 뮤지컬도 하고, 연극도 하고, 무용도 하는 복합공연장이 아닌, 뮤지컬만 ‘쭈-욱’ 하는 전용관이 생겨야 뮤지컬은 비로소 산업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염원 덕분일까. 2006년 마침내 뮤지컬 전용관 ‘샤롯데’가 개관했다. 개막작으로 세계적인 흥행작 ‘라이온 킹’이 오픈 런(open-run·종료일을 정하지 않고 공연하는 것)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작품은 1년 만에 막을 내렸다. 미국·일본 등에서 10년째 ‘라이온 킹’이 공연되는 것과 비교하면 분명 굴욕적 결과다. 돈도 20억원가량 손해 봤다. 흥행 실패에 대한 이런저런 분석이 나왔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건 “한국 공연시장이 아직 작다”는 것이었다. 전용관만 짓는다고 모든 게 풀리는 건 아니었다.

#2.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현재 세계 최대의 공연 기업이다. 한 해 매출만 2조원에 육박할 정도다. 2년 전 국내에도 입성, ‘퀴담’이란 작품으로 2개월 보름 공연해 14억원을 벌어들였다. 이에 고무된 태양의 서커스는 지난해 연말에도 ‘알레그리아’란 공연을 올렸다. 최고 성수기인 연말을 끼고 2개월 남짓 공연하는 덕에 더 높은 수익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경기불황 등이 원인으로 분석됐지만 결론은 “아직 한국인들이 10만원 넘는 돈 내고 서커스를 보기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태양의 서커스 대니얼 라마 CEO는 “한국에서 상설 공연을 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3. 캐나다엔 ‘서크 엘루아즈’(cirque eloize)란 서커스 단체도 있다. 이들은 “태양의 서커스에 이은 두 번째 서커스단”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태양의 서커스와 비교하기엔 규모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서크 엘루아즈가 만든 공연도 두 차례 한국 무대에 올랐다. 2006년 ‘레인’과 지난해 ‘네비아’다. 모두 2억~3억원의 손해를 봤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다만 철학적 깊이를 강조하는 탓에 대중이 쉽게 받아들이기 조금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무엇보다 “이미 태양의 서커스를 맛본 관객이 서크 엘루아즈에 만족하진 못할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4. 인천시는 내후년인 2011년 서커스 전용관을 오픈할 예정이다. 최근 “2000석짜리 전용관을 만들어 서크 엘루아즈의 신작 ‘아이디’를 4∼5년간 장기 공연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뮤지컬도 1년을 넘기기 어려운데 서커스를 4~5년간 한다? 그것도 서울이 아닌 인천에서? 태양의 서커스도 3개월 공연하기 버거운 한국에서 서크 엘루아즈의 작품으로 장기 공연을? 이 서커스 전용관을 짓는 데 들어가는 돈은 1400억원가량이라고 한다. 주먹구구식이라도 한번 따져보고 추진하는 것일까. 또 어떤 눈 먼 돈이 여기에 들어갈까.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타고난 까칠한 성격만큼 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있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더 뮤지컬 어워즈’를 총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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