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슬럼독 소년이 대박에 환호 안 한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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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35면

팬텀엔터테인먼트는 한때 증시에서 ‘꿈의 주식’으로 통했다. 2005년 초 300~400원에 불과했던 이 회사 주가는 같은 해 11월 4만3000원까지 치솟았다. 골프공을 만드는 회사에서 우회상장을 거쳐 연예기획사로 변신한 덕분이었다. 이 기간 주가 상승률은 무려 1만4000%에 달했다. 연 4% 수준의 은행 정기예금 금리와 비교하면 천문학적 수익률이었다.

그러나 대박의 꿈은 물거품으로 스러져 가고 있다. 코스닥시장본부는 지난달 31일 팬텀을 상장폐지 대상 기업으로 공시했다.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팬텀의 회계자료에 의견제시를 거절한 것이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됐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상장폐지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회사 측이 이의신청서를 제출함에 따라 상장위원회의 심의 절차가 남아 있다. 설사 상장폐지가 최종 결정되더라도 소속 연예인을 활용한 연예사업은 계속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지난달 24일부터 팬텀의 주식거래가 중단된 상태다. 만일 이대로 상장이 폐지된다면 일반투자자들이 들고 있는 주식은 사실상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배용준·이영애 같은 유명 연예인의 이름 석자에 하루 수백억원이 왔다갔다하는 시절이 있었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우회상장으로 증시에 진입하면 투자자들은 냉철하게 기업의 수익성을 분석하기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몰리는 행태를 보인 탓이다. 돌이켜보면 남이 더 비싸게 사줄 것이란 비이성적 투기심리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거품이 꺼지자 상투를 잡은 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봤다.

당시 우리 증시의 상황은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한때 네덜란드에 튤립 투기가 어찌나 심했던지 튤립 알뿌리 1개가 집 한 채 값과 맞먹었다고 한다. 탐욕에 눈이 멀면 결국 낭패를 보는 것은 동서고금의 이치인 듯하다.

오늘은 기독교에서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한평생 탐욕을 경계하고 청빈하게 살았던 예수의 가르침을 음미해 볼 만하다. 예수는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십자가 위에서 몸소 실천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에게 종교를 떠나 추모의 인파가 몰린 것도 김 추기경의 청빈한 삶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는 다르지만 법정 스님은 수필 『무소유』에서 작은 물질에 집착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화제를 모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지난달 국내 개봉했다.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란 인도의 TV 퀴즈쇼에서 우승한 가난뱅이 주인공은 2000만 루피(약 5억3000만원)를 상금으로 받는다. 인도의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한 방에 ‘인생 역전’을 이룬 셈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에도 정작 당사자는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 돈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그에게 인생의 가치는 다른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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