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이러한 ‘무대 뒤’ 풍경에 주목한 이가 있었으니,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다. 톨스토이가 어느 날 우연히 극장에 들렀다. 공연 연습이 막 시작된 터여서 무대 뒤로 돌아가야만 관람석으로 갈 수 있었다. 지하 통로로 들어서는 그의 앞엔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어둠과 먼지 속에서 마주친 얼굴들은 가난에 지치고, 피곤에 찌들고,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연습 과정이었다. “머저리.” “돼지 같은 것들.” 지휘자가 가수와 악사들을 향해 지휘봉을 휘두르며 온갖 욕설을 퍼부어댔다. 화려하고 우아한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이 경험은 톨스토이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닌 ‘인간을 위한 예술’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그는 “악의와 노기, 그리고 짐승 같은 잔인함으로 만들어지는 게 예술이라면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현재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탤런트 장자연씨 자살 사건과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의혹’의 본질도 무대 뒤의 실상이 폭로됐다는 데 있다. 만약 장씨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행정관의 모텔 투숙이 적발되지 않았다면 감춰진 채 스쳐 지나갔을 두 사건은 한국 사회가 음습한 접대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술과 성의 결합은 접대받는 갑(甲)과 접대하는 을(乙) 사이에 공범 의식을 심고, 이런 과정을 거쳐 갑과 을은 ‘형’ ‘동생’이 된다. 룸살롱에 모셔야 일이 빨리 풀린다는 영업 노하우의 비밀도 여기에 있다.
이젠 비즈니스 문화를 바꿀 때가 됐다. 장씨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익명의 남성들에게 젊은 여성의 삶이 유린당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접대 문화 바꾸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톨스토이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사회의 무대 뒤가 더 이상 ‘술접대와 성상납, 그리고 짐승 같은 본능으로’ 더럽혀져선 안 되겠기에 하는 얘기다.
권석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