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홍콩등 금융가 분위기…"정부보증으로도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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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뉴욕 금융시장에서 한국계 은행들은 이달초부터 자금 차입이 사실상 끊긴 상태. 시티.체이스맨해튼등 메이저 은행들의 경우 대출금리를 계속 올려오다가 이달초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불안하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대출을 중단. 이들 은행은 최근 하루짜리 단기물 이자로 리보 (런던은행간 금리)에다 1.5%까지 얹고 있고, 그래도 한국계 은행들이 계속 덤벼들자 대한 (對韓) 대출금을 회수한데 이어 '상환능력을 시험하겠다' 며 격일제로 자금을 주거나 아예 대출을 중단하기도. 말레이시아.중국계 일부 은행들은 대출이자로 리보에 1.8~2%를 추가 요구하고 있으나 그나마 돈이 없어 못쓰는 형편. 미 금융당국은 한국계 은행들을 상대로 '차입금리가 얼마냐' '자금 라인을 끊은 곳이 어디냐' '본점 지원상태는 어떤가' 등에 대한 보고서를 수시로 내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

…도쿄 (東京)에 나와 있는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신규 대출은 아예 불가능하고 기존 대출금을 회수당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 이라며 "일본 대장성은 규모가 큰 대출기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금 회수를 자제해 달라' 고 요청하고 있다" 고 밝혔다.

그러나 사정이 좋지 않은 일본 금융기관들은 원리금 상환 독촉이 심한 형편이라고. 일 금융기관들이 한국계 금융기관에 대해 설정해 놓은 단기자금 (코리안 라인) 규모는 대략 3천억~4천억엔 정도로 추산되는데 현재 상황은 조달자금 규모나 금리 면에서 한보.기아사태가 터졌을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

…월말이 닥친 28일 홍콩의 한국계 금융기관 직원들은 '단 한번 거래가 있었던 곳이라도 모두 찾아가 사정해 보자' 는 방침에 따라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드물 정도. 얼굴을 맞대고 읍소작전을 펼치지만 과거 자금줄이었던 미.일 금융기관들이 "무조건 갚으라" 고 나서고 유럽계 브로커들 역시 "돈이 없다" 고 발뺌하고 있다는 것. 홍콩의 한국계 금융기관 책임자들은 이를 "몇몇 특정 금융기관이 아닌 한국 전체에 대한 불신 탓" 이라고 해석하며 "한국 정부의 보증으로도 돈을 빌릴 수 없는 현실이 너무나 큰 충격" 이라고 한숨.

…런던도 국책은행과 우량 시중은행까지 돈을 구하지 못할 만큼 돈줄이 막힌 실정. 가장 형편이 좋았던 산업은행이 그동안 돈을 돌려줘 국내 금융기관들이 버텨왔으나 최근엔 산업은행도 자기 앞가름하기 바쁜 지경. 1억달러 안팎의 소액이라도 빌려주었던 바클레이스.미들랜드.냇웨스트 등 영국 은행들이 최근 크레디트 라인 (신용 한도) 을 20~30% 낮추는 바람에 더욱 압박을 받고 있다고.

런던.뉴욕.도쿄.홍콩 = 정우량.김동균.김국진.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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