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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스템 안정에 꼭 필요한 처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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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전 세계적 금융시스템의 붕괴로 그 구조와 규제방식의 근본적 취약성이 드러났다.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자들은 이런 리스크에 대처하기 위해 개별 금융기관뿐 아니라 전체 시스템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G20 공동선언문에 담긴 처방은 이전에 금융안정화포럼(FSF)이나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등이 내놓았던 처방과 별반 다르지 않다. 투명성 부족, 과다 차입, 금융회사의 비대화, 조세 피난처, 금융회사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인센티브, 신용평가회사들의 도덕적 해이 등에 처방이 집중된 것이다. 이들 문제가 모두 중요하긴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요소가 빠져 있다.

장기간의 버블에 이어 지난해 집값과 주가가 급락한 것이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앞으로 집값과 주가의 하락세가 지속되면 금융시스템과 경제 전반은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통제하려면 이 리스크가 자산 가격에 좌우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들이 이 점을 제대로 알고 있었더라면 집값과 주가가 치솟을 때 후일 정반대로 급락할 경우에 대비해 잉여자본 규모를 늘려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전 세계 은행들이 신용 위험을 판단하고 잉여자본 크기를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되는 신(新)바젤자기자본협약(바젤Ⅱ)의 최저자기자본 규제기준이 장기간에 걸친 자산 시장의 변동에 대해서는 명확한 지침을 주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의 한 원인이다. 이 협약의 규제기준은 시장이 좋아지면 리스크가 감소한다는 암묵적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시장이 평온할 때는 자본을 덜 쌓고, 변동이 심할 때는 자본을 더 쌓도록 요구한다. 이처럼 경기순환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한 자본 확충 기준은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증가시킨다.

이번 G20 회의는 바젤Ⅱ의 기준을 개정해 자본 확충 기준이 경기 순환 방향과 반대가 되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바젤Ⅱ의 개정만으론 충분치 않다. 은행들, 특히 거래 규모가 큰 국제적 은행들의 경우 장기간에 걸친 자산 시장의 변동에 따른 리스크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별 은행들이 투자를 많이 한 자산 시장의 등락과 반대 방향이 되도록 자본 확충 기준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자산 가격이 급등할 때 자본을 튼튼히 확충해 놓아야 나중에 급락할 때 견뎌낼 수 있다는 얘기다.

역사는 가격 변동이 크면 클수록 금융시스템과 경제가 치러야 하는 대가도 혹독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이번 위기의 교훈 역시 과도한 변동을 완화시킬 신중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장 참가자들이 참조할 만한 일종의 가격 기준을 공표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래서 이 기준에서 멀리 벗어난 거래가 위축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작금의 경제 이론으로는 경제학자나 정책 당국자들이 금융시스템의 리스크를 통제할 때 자산 가격의 변동에 주의를 기울이기가 어렵다. 그러나 당면한 금융위기는 이 중요한 요소를 더 이상 간과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로먼 프리드먼뉴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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