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산다]제주시해안동 영신농원 공영화 전공군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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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제주시해안동은 도심에서 2㎞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어디에서도 도시의 냄새를 느낄 수 없는 외딴 곳이다.

한라산을 가로질러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1100도로를 따라 한라산 남쪽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마을입구에 축산단지란 팻말이 붙어 있다.

6년전인 91년12월 이곳에 삶의 터전를 가꾸기 시작해 이제는 터줏대감이라고 자처하는 공영화 (孔永和.62.영신농원 대표) 씨. 30여가구 1백80명의 동네 사람들이 "장군님" 이라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예비역 공군소장 출신 (공사 7기) 이지만 지금은 8천여평의 농장에서 단감나무와 토종닭을 키우는 평범한 농부일 뿐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가 35년간의 군생활을 마감하고 한라산자락에 정착한 귀거래사 (歸去來辭) 는 유별나다.

'장군' 의 꿈을 이룬 그는 전역후 국영기업체등 직장을 기웃거리며 줄 (?

) 을 서는 것이 못내 싫어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러나 고향은 옛 정취을 잃고 있었고 그래서 발길을 돌렸다.

군 생활도 정리할 겸 부인 김순희 (金順熙.50) 씨와 2년동안 강화도를 시작으로 강원도주문진까지 국토순례에 나섰다.

마지막 여행지로 제주를 찾은 그는 구석구석 아홉바퀴나 둘러본 끝에 축산단지에 여정의 보따리를 풀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투박한 시골 인심이 살아 있고, 뭔가 이곳에서 할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몇가지 삶의 즐거움이 있다.

하나는 3년후에 거둬들일 수확을 기다리며 단감나무를 정성스레 가꾸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시골 구석을 찾아오는 선.후배들과의 만남이다.

그래서 그는 4백여평의 부지에 30평짜리 집이지만 고급빌라 10채와도 바꿀 수 없는 아담한 공간을 아내와 함께 3년동안 꾸몄다.

잔디가 곱게 깔린 정원은 종려나무와 비자나무.감귤나무등 20여종류의 유실수를 비롯해 50여종의 향토색 짙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작은 식물원' 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나머지 한가지 즐거움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살맛나는 고향' 을 만드는 일이다.

94년에 혜화장학회를 만들어 동네 중.고교생들을 뒷바라지 하고 있고 동네 어귀마다 진달래도 심었다.

내년 여름부터는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정담이나 나누려고 집앞에 아담한 정자도 지었다.

개발위원장으로 관공서를 찾아다니며 동네 허드렛일도 마다 하지 않는다.

그는 요즘 장성 출신들이 줄줄이 정치권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못마땅한 심기를 보였다.

"당신같은 사람이 혼탁한 정치권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논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요. 결국 거수기로 머물고 말 겁니다.

" '퇴역 장군의 길' 에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있는 그는 저녁노을을 뒤로 하고 부인과 양계장이 있는 목장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제주 = 고창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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