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4월 26일 오전 0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4호기. 원자로의 비상정지 실험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고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근 지역은 물론 북유럽 전체가 방사능으로 오염됐다.
반복된 사고로 20년 넘게 침체에 빠졌던 원자력 산업이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30년 동안 단 하나의 원전도 새로 건설하지 않았던 미국의 원전업계가 31기를 새로 짓겠다고 나섰다.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 국제사회의 중심 과제로 등장하면서, 석탄발전소를 원전으로 대체해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줄이자는 주장이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 가격이 언제 또다시 치솟을지 모르는 상황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전력난에 시달리는 중국도 2020년까지 40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유럽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스웨덴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고, 이탈리아도 2020년까지 4기 이상을 새로 짓기로 했다. 일본에서도 90년대 이후 대학들이 ‘원자력’이란 단어를 학과 간판에서 떼냈으나 최근 원자력학과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2022년까지 원전 12기를 추가로 건설해 전력 생산의 절반을 원전으로 충당할 계획이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건설 예정인 원전은 108기이고, 건설을 검토 중인 것도 266기나 된다. 현재 가동 중인 436기와 거의 맞먹는 숫자다.
하지만 우라늄 매장량에도 한계는 있다. 앞으로 50년 정도 쓸 수 있을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천년, 만년 후까지 남을 방사성 폐기물도 문제다. 미국은 20여 년 전부터 추진해온 네바다주 유카산 처분장의 건설도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환경운동단체는 지구온난화라는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원전이라는 바알세불(신약성서에 나오는 귀신의 왕)을 불러들여야 하느냐고 비난하기도 한다.
풍력·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 보급이 늘고 있지만 아직은 미흡한 부분이 많다. 안정적이고 값싼 신재생에너지를 얻을 때까지는 원전에 대한 의존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후손들에게 위험한 폐기물을 남기는 것을 미안해하는 정도의 염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