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사태 외교해결 기미…이라크 "조건부 사찰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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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무력충돌로 치닫던 이라크 사태에 한가닥 외교적 해결의 희망이 보이고 있다.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부총리는 16일 미국이 유엔 무기사찰단에 다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경우 사찰단 재입국을 언제든지 허용하겠다고 제안했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도 미국과 대결을 바라지 않으며 유엔에서 대화를 통해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도 국제사회와 조화속에 사태를 해결하기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날 카타르를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이라크가 유엔결의를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는 미국 입장은 확고하다고 말하고 그러나 "현 사태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고 강조했다.

빌 리처드슨 유엔주재 미 대사도 이날 "미국이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우선시하는 것은 아니다" 고 말했다.

이같은 변화는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거센 압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미국의 집요한 설득에도 불구하고 쿠웨이트. 이집트.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등 중동국가들은 잇따라 미국의 군사행동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이집트는 무기사찰단에 아랍 전문가들을 새로 포함시키고 미국인 요원수는 줄이는 중재안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시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중에서도 미국편에 선 나라는 영국 하나뿐이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리펑 (李鵬) 중국 총리가 16일 미국에 군사적 충돌을 피하라고 촉구했고, 전날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연대를 시사했던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이날 태도를 바꿔 협상을 통한 사태해결을 강조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무력충돌에 대한 강한 우려와 함께 대화.외교활동을 주문했다.

한편 이라크가 유연한 입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얻을 수 있는 것을 이미 얻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긴장을 고조시켜 7년 가량 계속되고 있는 유엔의 제재로 이라크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부각시킬 수 있었으며 유엔 안보리나 아랍국들 사이에서 미국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키는 효과도 거뒀다.

그러나 이라크는 유엔 무기사찰단에서 미국인 비중을 반드시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고, 미국도 군사공격의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아니어서 상황은 언제든 악화될 수 있다는게 관측통들의 전망이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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