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금융·외환위기 극복방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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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 경제가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 위기는 앞으로 몇 달동안 계속 심화될 전망이다.

환율은 계속 치솟을 것이다.

금리도 계속 오를 것이다.

대기업의 부도도 속출할 것이다.

종금 등 금융기관의 부도까지도 걱정된다.

1인당 국민총생산 (GNP) 은 1만달러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1960년대 이래 우리 경제가 경험해 보지 않은 최악의 난관이 앞에 있다.

왜 이렇게 됐나. 그 뿌리는 적어도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87년에 독재를 지속하겠다고 욕심을 부려 국가에너지를 소산시킨 전두환 (全斗煥) 정권의 잘못이 있다.

고비용경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88년에 우리 실력이 아니라 외부 삼저 (三低) 현상으로 일시 수출이 잘되자 기업을 불러 수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리라고 독려한 노태우 (盧泰愚) 정권의 실책은 결정적이었다.

경상수지 흑자는 89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고 외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문민정부'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 정부는 이미 누구의 눈에나 명확해진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 대응에도 실패했다.

겉치레에만 신경을 썼지 병의 근원을 다스리지 않았다.

누가 지금 '신경제 1백일계획' 과 '신경제 5개년계획' 을 기억하는가.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고통스럽게 하겠다" 던 취임초 약속은 지켜졌는가.

여섯명의 경제부총리와 다섯명의 경제수석비서관을 갈아치웠어도 그 누구도 경제위기의 심화를 막지 못했다.

그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의 가입에 열을 올려 귀중한 4년을 낭비했다.

멕시코가 OECD 가입 뒤 경제위기를 겪었듯 우리도 피할 수 있었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몰론 정부만 잘못한 것이 아니다.

가계부문의 과소비와 부동산투기로 금융저축이 줄어들어 자금난의 원인이 되고 국제수지 적자의 원인이 됐다.

기업이 과다차입하고 과잉투자를 하는 잘못을 저질러 외채문제가 심각하게 되고 금융난이 심화됐다.

그러나 이런 가계와 기업의 행태도 정부가 마련한 경제제도의 잘못에 연유한 것이다.

지난 10년간 제일 돈을 많이 번 사람은 땅부자들이다.

그들은 1천조원 이상을 벌었다.

지난 1년간, 아니 이 위기의 와중에도 돈을 쉽고도 많이 벌고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투기꾼이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부동산은 호황이다.

그 부동산 거품을 키우고 유지시키는데 지난 세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는 기여를 한 것이다.

부동산이 살면 금융이 죽는다.

세계 5위내의 저축률을 자랑하는 한국이 외국에 빚을 지고 외환위기를 겪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뿌리를 캐보면 부동산으로 돈이 몰리고 그럴수록 금융기관엔 돈이 마르기 때문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금융.외환위기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금융을 살리고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명약관화하다.

기업이 과다하게 차입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가계가 저축을 하되 예금.주식.채권 등 금융상품으로 저축하고 부동산으로 저축하지 않도록 유인제도 (incentive system) 를 바꿔야 한다.

사회주의 사회가 열심히 일하는 유인을 제공하지 못해 붕괴됐듯 우리 경제는 금융저축의 유인을 제공하지 못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땅값은 현수준에서 절반으로 떨어져야 한다.

지가가 떨어져야 물가도, 금리도, 임금도 떨어지고 국제경쟁력이 되살아난다.

부동산 블랙홀로 새나가던 저축자금이 금융기관으로 들어와야 은행.종금이 살고 주가가 제자리를 찾는다.

우리 국민이 우리 돈을 소중히 하게 되고, 그래야 우리의 돈값인 환율이 안정된다.

돈값이 제대로 돼야 기업은 차입을 줄이고 수익성 있는 부문에만 투자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자금의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바뀐다.

부실채권 정리에 5조원이니, 10조원이니 국민부담을 지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게 아니다.

금융위기의 극복은 의외로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스스로의 노력 없이 땅값 상승으로 이득을 보는 불로소득 기회를 제도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첫번째 과제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 업무에 독립성을 부여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두번째 일이다.

이렇게 해서 물가를 안정시키고,가계와 기업이 토지를 돌 보듯이 하고, 돈을 황금 보듯이 하게 된다면 우리 경제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질적 발전을 해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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