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소설가 9명의 서울, 서울, 서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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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 땅의 ‘잘나가는’ 여성 소설가 아홉 명이 의기투합했다. 1980년생 김애란부터 김숨·이신조·윤성희·편혜영·하성란·강영숙·권여선을 거쳐 60년에 태어난 이혜경까지. 밥을 벌고 소비하기 위해 거주하거나 출근하는 공간, 서울에 ‘작가의 눈’을 들이대기로 했다. 그게 1년 전인 지난해 봄이다. 그 결과물이 단편소설집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강)로 이번주 세상에 나왔다.

여성 소설가 아홉 명이 서울을 소재로 한 소설집 『서울, 어느 날 소설이 되다』를 펴냈다. 이들이 지난달 31일 한 자리에 모여 소설과 서울 얘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김숨·윤성희·하성란·편혜영·김애란·이신조·권여선·이혜경·강영숙씨. [김상선 기자]


세상살이와 창작의 무대이자 배경으로서의 서울이라면, 우리는 이미 빼어난 전작들을 가지고 있다. 소설가 박태원(1909∼87)은 장편 『천변풍경』을 통해 30년대 서울의 풍속을 세밀하게 보고한 바 있다. 김승옥이 65년에 발표한 명단편 ‘서울, 1964년 겨울’에서 서울은 변두리 선술집 인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만났다 헤어지는, 비정하고 황량한 공간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수 십년 이쪽의 여성들은 서울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어떤 생각에 이번 소설집에 실린 것 같은 작품을 썼을까.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홍대 인근의 한 식당에 아홉 명이 모두 모였다. 책 출간을 자축하기 위해서다. 문학평론가 황광수, 시인 김정환, 소설가 박현욱·서성란씨 등이 합석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서울과 소설로 흘렀다. 앞서 궁금증들이 시나브로 풀렸다.

‘서울 소설집’ 아이디어는 강영숙·하성란·윤성희가 만든 술자리에서 싹텄다. 강영숙(43)씨는 춘천에서 태어났지만 중학교 시절부터 줄곧 서울에서 살고 있다. 강씨는 “내게 서울은 가는 방향을 알 수 없는 커다란 배같다”고 말했다. 이 배는 화려하고 복잡한 색깔을 품고 있다. 강씨는 “역동적이면서도 미지의 대상인 서울이 훌륭한 소설 소재·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충남 보령 생으로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이혜경씨는 경희대 국문과에 진학하면서 처음 서울을 접했다. 이씨는 “민망한 비디오테이프를 대낮에 버젓이 팔던 세운상가의 인상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뭔가 활기차면서도 남루한 도시의 속살을 들여다 본 느낌이었다. 이씨는 “하지만 공간에 얽힌 내 얘기가 자꾸 나오려고 해 소설 쓰기는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윤성희(36)씨는 “서울은 그곳에서 태어나 고향으로 삼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도시”라고 정의했고, 이신조(35)씨는 “섬세하지 못한 곳”이라 풀었다. 반면 편혜영(37)씨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크림색 소파의 방’에서 “8년이나 지방도시에서 근무한 데다 서울에서는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면서도 결국은 돌아오는 주인공을 통해 ‘고향으로서의 서울’을 그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즉흥적인 ‘졸속 기획’이 아니라 회임 기간이 길어서일 것이다. 이런 해명들 이상으로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은 번듯하고 아름답다. 어떤 단계에서 예술은 결국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가볍지 않은 얘기를 단아한 문장 안에 심각하지 않게 다루는 작품에 끌리는 편이라면 하성란(42)씨의 작품 ‘1968년의 만우절’을 권한다. “활짝 열린 창으로 불어오는 미풍은 부드러웠다. 발원지의 숲과 강을 통과해 불어오는 바람 냄새에 꼬리뼈 자리가 간질간질했다. 긴 꼬리로 나뭇가지를 감아 가볍게 매달려 있고 싶었다”같은 문장을 만날 수 있다. 소설집은 서울시의 창작지원금 500만원을 받았다.

신준봉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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