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요리]김점선씨의 추어탕…하늘로 간 어머니의 별미 메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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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추어탕은 친정어머니의 별미메뉴였죠. 어제 음식 재료를 다듬다가 오랜만에 지는 해를 보며 어머니 생각을 했어요. 눈물이 나긴 했어도 옛날처럼 슬프지 않은 걸 보면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나봐요. " 주부 김점선 (金点仙.39.서울동작구상도5동대림APT) 씨는 중3때 이후로 석양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남들은 아름답다고 하는 붉은 노을 질 무렵이 그에겐 견딜 수 없는 그리움과 원망의 시간이었기 때문. 봄바람이 불기 시작할 무렵, 金씨 고향인 경남밀양의 장날이었다.

사흘 뒤인 아버지 생신 때 부산으로 시집간 언니도 형부와 함께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좋게 장에 가신 金씨의 어머니는 해가 져도 돌아오질 않았다.

미역을 고르다 갑자기 고혈압으로 쓰러진 것. 졸지에 어린 金씨는 '다른집 엄마들은 밭일 나갔다 집에 들어오실 시간' 에도 영영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대신해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두 동생을 돌보는 안주인 노릇을 떠맡아야 했다.

"음식솜씨 좋고 부지런하시던 어머니 덕에 전 밥 한번 지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해 추석땐 어머니께 올리는 첫 차례상마저 옆집 할머니께 도움을 청하고 펑펑 울었죠. " 그후 새어머니를 맞기까지 2년동안 金씨는 이웃과 친척에게 묻고 일일이 적어가며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

나이가 어리다보니 요령이 없어 도시락반찬 하나 만드는데도 몇시간씩 걸리기 일쑤. 하지만 어머니를 닮은 그의 손끝은 하루가 다르게 그럴듯한 음식맛을 내기 시작했다.

"쇠고기가 귀하던 그 시절에 추어탕은 더할나위 없는 보양식이었어요. 동생들과 함께 논이나 밭두렁에서 미꾸라지를 한소쿠리씩 잡아오면 어머니께선 꺼칠한 호박잎 뒷면으로 박박 문질러 씻어가며 구수한 탕을 만들어 주시곤 했죠. " 그래서 결혼 후 金씨가 본격적으로 '요리' 를 만들면서 맨먼저 익힌 음식 중의 하나가 추어탕. 어머니가 하셨듯 대나무소쿠리에 미꾸라지를 넣고 국자로 으깨면 뼈와 오물은 남고 살부분만 쏙 걸러졌다.

믹서로 완전히 갈아서 만든 것과 달리 국물도 깔끔하고 더 시원했다.

특히 옛날 친정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시던 기억이 나 金씨는 아버지가 찾아오실 때면 늘 추어탕을 끓여드렸다.

그리고 몇년 후 "이제 네 솜씨가 엄마 못지 않구나" 라는 아버지 말씀에 그는 또한번 울음을 삼켜야 했다. "어릴 땐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를 원망도 했지만 이젠 효도 한번 못해드린 게 가슴에 걸려요. " 金씨는 아직 철없는 덕균 (14).주형 (5.여) 남매를 보며 언젠가는 그들도 그런 자식의 마음을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김정수 기자

만드는법

▶재료 (4인분) =미꾸라지200g, 굵은소금 약간, 얼갈이배추1단 (小) , 숙주나물200g, 붉은고추.풋고추2~3개씩, 산초가루50g, 된장1/2큰술, 대파2대, 참기름1큰술, 양념장 (조선간장3큰술, 고춧가루1. 5큰술, 다진마늘1큰술, 소금약간)

▶조리법 = ①미꾸라지는 소쿠리에 담아 굵은 소금을 치고 뚜껑을 덮어 3~4분 둔다.

②뚜껑을 덮은 채 소쿠리를 흔들어 해감을 빼낸 뒤 찬물을 부어가며 깨끗이 씻는다.

③냄비를 불에 올려놓고 뜨거워졌을 때 참기름을 약간 두른 다음 미꾸라지를 넣고 뚜껑을 꼭 닫는다.

④2분쯤 후에 물을 붓고 30분 정도 끓인다.

⑤미꾸라지를 건져 소쿠리에 넣고 국자로 으깨면 살부분만 아래로 빠져 나온다.

⑥얼갈이배추는 데쳐서 먹기좋게 4~5㎝길이로 자르고 숙주나물도 다듬어서 데친뒤 각각 양념장으로 버무려 놓는다.

⑦미꾸라지를 끓였던 국물에 ⑤⑥과 어슷썰기한 대파를 넣고 된장을 풀어 한소끔 더 끓인다.

⑧고추는 잘게 다져두었다가 산초가루.소금과 함께 식성에 맞춰 넣어 먹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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