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에 도전하는 젊은 여성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여자가 드럼을 친다구?'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뛰실 요량이라면 신촌이나 홍대앞으로 한번 가보시라.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록음악 연주 카페를 찾는게 어려우면 어려웠지 그속에서 여성 드러머를 찾는 게 어렵진 않을게다.

'그냥 눈요깃거리로 세워둔 것일테지 뭐' 라고 말하고픈 사람들은 정말로 가봐야 한다.

박자의 기본을 이루는 스네어 드럼, 각기 다른 톤의 톰톰 드럼, 머리를 쿵쿵 울리는 베이스 드럼, 간간이 액센트를 주는 심벌등 드럼 세트를 종횡무진, 그야말로 신나게 두들겨대는 '그녀들' 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좀 문화적 충격을 받을 필요가 있다.

다음은 그녀들이 말하는 '드럼이 애인보다 좋은 다섯가지 이유' .

1. 왜 하필 드럼이야?

우선 '열매' 를 따기가 쉽다.

기타는 한두달 배워봤자 코드 진행도 모르기 일쑤지만 같은 기간 드럼을 배우면 4분의4박자 기본 리듬을 두 손과 두 발을 따로 놀리면서 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수줍음을 타는 여성에게도 안성맞춤이다.

공연을 하다보면 다른 주자들은 '발이 자유롭다' 며 갖가지 무대행위를 벌이게 마련이지만, 드럼 주자는 그냥 뒷편에서 스틱을 휘둘러대기만 하면 된다.

서울서초구반포동 '재즈아카데미' 의 유정렬 (34) 기획실장은 "다루는 악기에 따라 사람들 성향이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얼핏 과격해보이는 드럼 주자들은 예상과 달리 대부분 순진하고 내성적이다" 라고 말한다.

2.얼마나 많이들 배우길래…

드럼을 배우려는 사람중 20%가량이 여성이라고 한다.

재즈아카데미 1년 과정 드럼반의 경우 지난해에는 33명중 7명이, 올해는 31명중 5명이 여성이다.

나이가 젊어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대학생과 중고생이 주고객인 음악학원 신촌 MSI 동영욱 (42) 사장은 "94년 학원을 차린 이래 드럼반에 가입하는 여성의 비율이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방학이 되면 평소보다 1.5배정도 많은 여대생들이 몰려온다" 고 말한다.

3.아무래도 힘들텐데…

'드럼'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근육질의 남성, 파괴본능등을 떠올린다.

드럼이 힘을 필요로 하는 악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꾸준히 헬스를 다녀야 연주가 가능한 정도는 아니다.

다양한 장르에 다양한 드럼 소리가 있듯이, 여성 드러머에 적합한 장르가 있다.

드럼 강사 김현종 (33) 씨의 말. "여러 장르를 혼합해 각 장르의 극단적 특성을 중화시킨 퓨전같은 음악에는 드럼 소리를 예쁘게 조리할 줄 아는 드러머가 필요하다.이경우엔 아무래도 남성보다 여성이 낫지 않겠는가."

남성보다 섬세한 여성이 강약은 물론, 부드럽고 거친 음의 질적 차이까지 소화하기 쉽다는 얘기다.

간결하고 단순하면서도 경쾌한 리듬의 펑크도 여성 드러머들에겐 '만만한' 장르다.

그룹 '비누도둑' 의 드러머 한유선 (25) 씨는 "파워 드럼이 모든 드러머의 지향점은 아니다" 라며 자신의 장점은 '아기자기한 연주' 라고 말한다.

4.여자로서 어려운 점이라면?

물론 있다.

'드러머' 아닌 '여성' 으로 대하는 시각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불쾌해하는 것은 언더그라운드에서 오버그라운드로 '신분상승' 을 꾀하려는 몇몇 그룹들이 '튀어보여야 성공한다' 는 방정식을 풀기 위해 여성 드러머를 '액세서리' 로 이용하는 것. '타임' 의 드러머 허미정 (24.예명 서희) 씨는 "실력과 경력이 중요한 것 아니냐" 며 "여성 드러머를 구하는 공고는 많이 봤지만,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경우엔 오디션도 보지 않는다" 고 말한다.

5. 그것참, 세상 많이 변했구먼.

여성 드러머가 늘고 있는 현상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궤를 같이 한다.

근거없는 성역할의 구분이 무너지면서 드럼 분야의 장벽도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연세대생들로만 구성된 그룹 '빵' 의 드러머 정연경 (21.상경계열 2년) 씨는 '남성이 독점하던 분야니까 여성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라는 식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는다.

영국 만화 '탱크 걸' 의 주인공처럼 그녀는 자신이 남성보다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은, 한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음악이 '듣기' 에서 '하기' 의 대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음악의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니…. 세상이 많이 변하긴 변한 모양이다.

배익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