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판타지, 밀리터리 SF의 종합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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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호 13면

지난달 출간된 소설『디센트』(시작)의 홍보 문구는 화려하게 시작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세계, 대륙과 해양으로 뒤얽힌 거대한 미궁에서 한때 위대했던 고대 헤이들 문명의 흔적이 발견된다. 인간의 두개골로 화환을 만들어 두른 짐승의 입, 죄악에 갇힌 인류의 모습을 담고 있는 벽화….”

조현욱 교수의 장르문학 산책-『디센트』

미국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서평은 또 어떤가. “초자연적 호러, 잃어버린 종족을 다룬 판타지, 밀리터리 SF의 환상적 종합. 제프 롱의 소설은 에너지와 아이디어·흥분으로 넘친다.”

필자의 독후감도 그리 다르지 않다. 두 권, 900쪽에 이르는 분량을 이틀 만에 독파하게 만드는 흡인력을 갖춘 책이다. 거대한 지하세계에는 인간을 노예이자 먹이로 취급하는 사악하고 소름 끼치는 존재들이 살고 있다. 직립원인의 후손이지만 지하에서 별개의 진화 과정을 거친 헤이들이라는 종족이다. 미국 정부와 다국적 기업은 과학탐사팀과 군인들을 내려 보내 전투를 시작한다. 다국적 기업은 지하세계를 식민지화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지상에서는 예수회의 수사를 주축으로 하는 베어울프 학회가 증거 수집에 나선다. 인류가 사탄이라 불러왔던 존재가 바로 헤이들의 지도자가 아닐까 하는 게 학자들의 의심이다. 여기에 잃어버린 문명의 언어와 기록을 해독하려는 언어학자 수녀, 한때 헤이들의 노예로 생활했던 산악 가이드 출신의 주인공이 얽히면서 이야기는 긴박하게 전개된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이라고 할까. 과학과 신학의 역사에 대한 지적 성찰, 지하세계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을 밝히는 미스터리, 절대악이 살아 숨쉬는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선 서사적 모험, 선과 악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잘 버무려진 모험소설이다. ‘블레이드3’의 감독 데이비드 고이어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다.

저자 제프 롱은 히말라야 산맥에서 여러 해 동안 투어 가이드로 일했으며 유럽안보협력기구 감독하의 보스니아 첫 선거에서 감독관을 맡는 등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다.
흥미진진한 이 소설에서 아쉬운 것은 무신경한 번역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만 제곱미터 혹은 5제곱마일에 달하는 ‘이야기 벽’이 각 여행자를 수행했다.”(1권 157쪽) 같은 표현은 동일한 벽을 설명한 것이니 “넓이 1만 제곱미터, 길이로는 5마일에 달하는”이라고 해야 맞을 듯싶다.

“이 범위를 좀 봐요. 한 지질학자가 군인의 라이플 총으로 강을 살살 훑고 있었다.”(2권 95쪽)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서 ‘범위’는 소총에 부착된 ‘scope’ 즉, 조준경의 오역으로 보인다. “텁수룩한 눈썹은 가소화된 상태였다”(2권 237쪽)는 표현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묘사가 상세하고 현장감이 생생하다는 원서의 특징을 살리지 못한 대목이다.


조현욱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과 문화담당 논설위원을 지냈다. 무협소설과 SF 같은 장르문학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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