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서러운데 사입을 옷도 없다…노인체형에 맞는 의류 개발·판매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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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돈만 있으면 뭐든지 못 사는 게 없는 세상. 하지만 예외는 있다.

과천에 사는 이순실씨 (69) 는 "나같은 할머니들은 마땅히 입을만한 내의 한벌, 옷 한벌 사기 힘들다" 며 온갖 물건들이 쌓여있는 백화점에 갈 때마다 분통이 터질 지경이라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이씨의 불만사항을 한번 살펴보자. 여자 노인들은 대개 나이가 들며 살이 처지고 몸매도 펑퍼짐해지기 십상. 이씨 역시 허리가 34인치까지 늘어나다보니 몸에 맞는 팬티 한장을 사기위해서도 만만찮은 고생을 겪는다.

일반 내의업체에서 내놓는 1백짜리 치수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고, 어렵게 1백5짜리를 찾아입으면 너무 꽉 끼어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보니 재래시장을 찾아헤매다 노점상이 파는 헐렁한 사각팬티를 사입게되는데 어쩌다 한번 나오는 이들 노점상을 만나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인 형편.

속옷 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겉옷도 마음에 드는 걸 찾기가 지극히 힘들다.

노인용 옷이란게 따로 없다보니 백화점이며 재래시장에서 중년부인용으로 나오는 옷 밖에 달리 선택권이 없기 때문. 하지만 등이 약간 휜 이씨가 옷을 입으면 뒷부분이 붕 떠서 영 모양이 나질 않는다고. "옷 사입기 힘들다" 는 볼멘소리가 어디 이씨만의 것일까. "요즘은 노인들도 멋부리는 욕심이 젊은 사람 못지않아요. 그런데 아무리 멋을 내려도 노인들한테 맞는 옷이 통 없으니 답답할 수 밖에요. " 할머니 본인도 문제지만 키가 크고 홀쭉해 허리가 일찍 굽은 남편의 옷을 사는 데도 어려움이 많다는 박금순씨 (65.서울송파구방이동) .점퍼 하나를 사더라도 품에 맞추면 허리때문에 뒷쪽 길이가 껑충하고 길이를 맞추면 품이 너무 벙벙해 보기 싫다고 말한다.

평균수명의 증가로 노년층의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65세이상 인구비율 70년 3.3%→95년 5.2%) , 이들을 '배려' 한 실버상품 개발은 미미한 수준이어서 많은 노인들이 불편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높아진 노인들의 구매력을 겨냥해 백화점마다 설치됐던 이른바 '실버의류 코너' 들도 수지타산이 안맞는다며 최근엔 폐지되는 추세. 또 일부 노인용 브랜드를 표방하는 업체들도 따지고보면 딱히 노인들의 체형을 고려한 제품을 내놓는건 아니어서 별 도움이 되질 않고있다.

"사실 크기나 디자인에서 중년용 옷이나 별 차이가 없어요. 다만 손님들이 매장에서 등이 많이 굽었으니 뒷품을 늘려달라, 목선을 좀 좁혀달라는 요구를 해오면 본사에서 맞춤을 해드리곤 하지요. " 한 업체 관계자는 말한다.

그나마 한벌에 30~40만원을 호가하는 비싼 브랜드이기에 맞춤이 가능한 것이지 중저가 브랜드나 재래시장 옷이라면 어림도 없는 얘기. ㈜비비안의 정낙순 디자인실장은 "여자 노인들이 겉보기 흉한데도 브래지어 착용을 기피하는 것 역시 마땅한 제품이 없기때문" 이라고 지적한다.

여자 노인들이 착용하려면 가슴둘레도 커야할 뿐더러 여밈도 뒤가 아니라 앞으로 와야 편한데 시중엔 아직 그같은 제품이 나와있지 않다는 것이다.

"피부에 까칠까칠 각질이 이는 점을 고려, 소재도 잘 늘어나는 면으로 만든 노인용 브래지어의 개발이 시급하다" 고 할머니들은 입을 모은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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