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민주계, 친노 386 … “박연차 인맥 이리 넓은 줄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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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발이 넓은 줄 몰랐습니다. 나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몰랐던 거 같아요.”

26일 오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 의원은 이날 밤 늦게 영장이 발부돼 구치소에 수감됐다. [뉴시스]


부산 지역 유일한 민주당 소속인 조경태(사하을) 의원이 26일 이렇게 말했다. 최근 정국의 뇌관으로 떠오른 박 회장의 ‘마당발’ 인맥을 두고서다. 그는 “박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건 알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각계에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는 데 정말 놀랐다”고도 했다.

박 회장의 폭넓은 인맥이 새삼 화제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그는 재계의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각인돼 왔다. 그러나 ‘박연차 리스트’가 터진 이후 그가 세무 조사 무마 등을 위해 현 정권 실세들에게까지 손을 뻗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광폭 교유’에 관심이 쏠린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나 친노 386 인사들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머리와 수완으로 신발사업에 성공한 박 회장은 주 활동무대인 부산·경남(PK) 지역의 인맥을 바탕으로 집권층의 핵심부에 선을 대 왔다. 박 회장이 최초로 인연을 맺은 정치권 인사는 고 손태인 전 의원이다. 동향(경남 밀양) 출신으로 어린 시절 옆집에 살았던 가장 친한 친구 사이다. 이기택 전 의원이 이끌던 ‘꼬마 민주당’을 거친 손 전 의원이 수차례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는 동안 박 회장은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손 전 의원과 함께 꼬마 민주당에 몸담았던 허태열·안경률 의원 등과도 이때 안면을 텄다.

박 회장은 부산 지역 정계의 핵심 인맥인 김영삼(YS) 전 대통령 측 민주계 인사들과도 상당한 친분을 맺었다. 민주계 맏형 격인 홍인길 전 청와대 수석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십 년 전부터 잘 알고 지냈다. 나를 통해 다른 민주계 인사들과도 관계를 맺었다”며 “박 회장의 성격이 워낙 호기로워 사람들 도와주기를 즐겼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민주계와 폭넓은 교유를 원했지만 1990년 히로뽕 투약 혐의로 구속되면서 민주계 쪽에서 그를 피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회장에게 첫 구속은 검찰과의 ‘끈’을 만들어 줬다. 당시 그를 구속한 주임 검사가 바로 민유태 전주지검장이다. 민 검사장과 박 회장은 이후 수차례 골프 회동을 하는 등 관계를 유지해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회의원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의 선거 자금 마련을 위해 형인 건평(구속)씨가 땅을 내놓았는데 이를 박 회장이 사주었다. 구속 된 이광재 의원과 검찰에 소환된 서갑원 의원 등 친노 386과의 인연은 노무현 정부 시절 본격화됐다.

박 회장과 386 사이엔 노 전 대통령뿐 아니라 김혁규 전 경남지사라는 가교가 있었다. 김 전 지사와 박 회장은 박 회장이 김해상공회의소 의장을 하던 시절 가까워졌다. 이후 김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으로 향한 것과 관련,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과 김 전 지사를 연결해줬다”는 얘기도 나온다. 천신일 회장과도 수십 년 인연이다. 천 회장의 동생과 친구였던 박 회장이 처음 독립해 작은 공장을 차린 곳이 바로 천 회장 집의 한 귀퉁이였다고 한다. 박 회장은 그 뒤로 지인들에게 “천 회장께 많은 신세를 졌다”는 얘기를 자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천 회장의 동생 사망 이후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을 만큼 돈독해졌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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