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회 중앙음악콩쿠르 영광의 얼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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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막을 내린 제 35회 중앙음악콩쿠르가 ‘샛별’ 22명(1~3위 입상자)을 배출했다. 이 콩쿠르를 거쳐 세계로 뻗어나간 스타급 음악가 조수미·김대진·김우경 등의 든든한 후배가 될 이들은 “음악이야말로 즐겁고 신나는 놀이”라는 행복함을 전했다. 젊음과 즐거움의 현장이었던 콩쿠르의 입상소감, 심사평, 본선 채점표를 싣는다.

김호정 기자

스승에게 깊이를 배우다
피아노 정한빈

정한빈(19·한국예술종합학교1·사진)군은 대학 합격 소식을 들은 직후 콩쿠르 준비를 시작했는데 “스승인 김대진 교수님이 내가 늘 긴장을 놓지 않도록 돕는다”고 감사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배우던 그를 본격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한 이도 김교수다. “내 음악에서 늘 부족한 깊이를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다”는 것이 정군의 설명이다. 그는 현재 개그맨 지망생인 남동생과 함께 어린시절 천방지축 뛰어놀다 머리를 열 바늘 이상 꿰맸던 ‘까불이’였다. 이제 음악의 매력에 푹 빠진 정군은 첫 도전에서 훌쩍 1위에 뛰어올랐다.

◆심사평= 5명 모두 안정된 테크닉 을 보여줘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정한빈은 어린 나이에도 피아노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는데, 음량의 진폭만 더 늘린다면 좋겠다. 미세한 흔들림 때문에 아깝게 2위에 머문 한지원은 예민한 음감각과 견고한 구성력이 돋보였다. 김혜인은 탁월한 기교가, 김윤지는 곡 전체를 파악하는 조형력이 특징이었다.

김용배(추계예대 피아노 전공 교수)

스스로를 들들 볶는 성격
바이올린 고은애

“결과도 안 보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고은애(20·서울대2·사진)씨는 23일 본선 연주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중 입상 소식을 들었다. “연주하면서 최고로 집중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9명의 심사위원 중 4명에게 1위로 낙점받았다. 7살에 음악을 시작해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졸업한 그는 자신을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소개한다. “연주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스스로 들들 볶는다”는 것. 고씨는 “비슷한 성격에 열정을 더한 김영욱 교수를 대학에서 만나면서 이 완벽주의가 빛을 발한 것 같다”며 기뻐했다.

◆심사평=1·2차 관문을 어렵게 뚫고 올라온 만큼 본선 진출자 3명은 모두 훌륭한 연주를 들려줬다. 본선 지정곡인 브루흐의 ‘스코티시 환상곡’은 짜임새있게 곡을 끌어나가는 능력이 중요한 작품이다. 음색의 안정감과 적절한 빠르기로 내면적 음악 세계를 잘 소화해낸 이들 모두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예선에서부터 돋보였던 참가자들의 강한 색채가 잘 전달됐다.

김선희(충남대 관현악과 교수)

유도 배우다 노래의 길로
남자성악 김영우

김영우(23·추계예대 대학원·사진)씨의 꿈은 경호원이었다. 유도·합기도 등에 매진했다. 고등학교 때 학교 중창단에 가입한 것도 운동 뒤 피로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끈질기게 성악 공부를 권하는 음악 선생님 열화에 못이겨 수능시험 직후 성악 공부를 시작했다. 늦깎이 성악가인 만큼 이번이 첫 콩쿠르 수상이다. 한 국제 콩쿠르의 한국 예선 3위가 지금껏 ‘최고’ 성적이었다. 심사위원 9명 중 8명이 그를 1위로 평가해 당당히 우승했다. 김씨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주위에서 잘한다고 생각해주는 운이 따른다”며 더 큰 꿈을 내비쳤다.

◆심사평= 본선에선 관중들이 많았던 탓인지 긴장해서 서두르고 표현이 소극적인 연주자도 있었으나, 대체로 당당하고 훌륭한 연주를 했다. 김일훈은 장래가 기대되는 베이스다. 김영우는 풍부한 성량의 테너인데 보다 세심한 음정의 주의를 요한다. 최병혁은 미성이며 아카데믹한 표현이 돋보였다. 입상자들이 더욱 발전하길 기대한다. *최희윤은 기권

김요한(명지대 성악전공 교수)

첫도전 땐 예선 탈락 쓴맛
여자성악 최정원

최정원(25·경희대 대학원·사진)씨는 세 번 도전 끝에 1위에 올랐다. 첫 도전은 1차 예선 탈락. 두번째는 2차에서 미끄러졌다. “아무 생각없이 노래를 했던 것 같다”는 것이 그가 분석한 패인이다. 그의 노래 실력이 좋아진 것은 음악 코치 정미애씨와 만난 뒤다.

음악 뿐 아니라 가사의 발음, 연기 등을 지도해주는 스승과 함께 노래를 제대로 알아갔다. 최씨는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 딸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어머니에게 감사한다”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형편이 어려운걸 알면서도 음악을 하겠다고 고집했을 때 묵묵히 믿어줬던 어머니다.

◆심사평=풍부한 소리, 깊은 음악적 표현, 테크닉 등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내는 노래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부문에 더 비중을 두는가는 심사위원들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김지은은 풍부한 성량으로 극적 표현에 능했고, 최정원은 서정적 감수성의 표현이 뛰어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원칙과 보편성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김요한(명지대 성악전공 교수)

‘지바고’ 보며 러시아 이해
첼로 정윤혜

“첼로 연주가 행복하고 좋다.” 정윤혜(18·한국예술종합학교1·사진)양은 6살에 시작한 첼로가 즐거워 평생 동반자로 삼았다. 부모님이 “취미로 해보라”며 준 악기였다. 20세기 러시아 작곡가 카발렙스키의 절묘한 색채를 완벽히 표현해 1위를 거머쥔, 무서운 신예다. “러시아 음악을 이해하려『전쟁과 평화』 를 읽고 영화 ‘닥터 지바고’를 봤다”고 할만큼 음악에 대한 열의가 뜨겁다.

◆심사평= 카발렙스키는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와 가까운 사이였다. 생소할 수도 있는 이 작품은 친숙한 연주자 덕에 훌륭한 첼로 음악으로 거듭났다. 본선 진출자 3명은 이 작곡가의 음악에서 좀 더 연극적 인 면을 발견해 표현하는 수준에 이르길 바란다. 이동우(울산대 관현악전공 교수)

대장간 소리서 영감 얻어
작곡 정상희

정상희(24·성신여대 졸업·사진)씨는 몇해 전 시골 마을에서의 기억을 녹인 작품으로 작곡부문 1위를 차지했다. “한 대장간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소리를 듣던 중 한국 음악을 발견했다”는 것. 고2때 뒤늦게 작곡을 시작한 정씨는 “이번 콩쿠르가 첫 1위 수상인데 구체적 경험이 좋은 재료라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심사평=금관 악기 네 대와 피아노 한 대의 흔치않은 악기 편성임에도 본선 진출자 3명 작품 수준이 모두 수준급이었다. 연주 또한 매우 좋았다. 다만 몇 작품에서 나타난 악기 특성 파악의 미흡, 전체적인 연주 균형의 부조화가 아쉬웠다.

김준홍(경희대 작곡과 교수)

플루트 2위 손소정·손소이

◆심사평= 비슷한 수준의 연주력에 심사위원들의 표가 엇갈려 1등을 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반주자와 호흡을 맞췄다면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반주자들도 반주라고 생각하지 말고 연주자들이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서로의 앙상블을 위하여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혜란(성신여대 기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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