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산다]박경수 前국회의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구부정한 허리에 흰 운동모자를 쓰고 검정 고무장화를 신은 박경수 (朴炅秀.59) 씨. 외모로는 그가 8년동안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경기.충북.강원 3도에 인접한 원주시부론면정산3리. 원주시내로부터 문막읍을 거쳐 50여분동안 산길을 돌아 마을 사람들로부터 朴전의원 집을 묻자 존칭없이 대뜸 '박경수' 라며 길을 안내한다.

이미 그는 정치인에서 농민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올해초 예전의 집보다 더 외진 곳에 양옥집을 짓고 이사한 朴씨의 생활은 다른 농민과 다름없다.

오전 5시에 일어나 1㎞가량 떨어진 1천3백여평의 논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아침식사를 한 뒤에는 집 부근의 양돈장에서 하루종일 돼지들과 씨름한다.

새로 낳은 새끼 돼지들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은 물론 출하될 돼지를 고르는 일, 분뇨 치우기등을 5명의 직원들과 다름없이 한다.

한미양돈. 지난 93년 정치인 재산공개후 가장 청렴한 의원으로 알려지자 교포들의 초청을 받아 미국에 갔을 때 동포들이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에 보태라고 모금해준 돈이 모태가 됐기에 농장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당시 朴씨는 자신의 소개로 결혼한 농촌총각들에게 송아지 1마리씩을 결혼선물로 주었다.

정계 은퇴후 7개농가의 출자를 받아 협업단지를 구성, 자신의 담배밭에 양돈장을 만들었다.

국회의원 시절 소를 키웠던 朴씨는 미국방문에서 방목현장을 보고 소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 이 농장은 3천여마리 (모돈 기준 2백60마리) 를 키울 수 있는 규모로 돼지들은 한국냉장에 납품, 수출된다.

농사를 짓지만 수출만이 국가경제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朴씨는 돼지우리 한쪽 벽에 '수출보국' 이란 글귀를 새겨놓았다.

이렇게 하루종일 돼지키우는 일에 매달리다 저녁이면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막걸리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국회의원을 지낼 때도 고향을 떠나지는 않았지만 자주 만나지 못한 거리감을 메우기 위해서다.

朴씨가 자신의 농사일 이외에 신경쓰는 일은 그가 지난 80년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을 펴기 위해 조직한 농우회 (農友會) 활동. 10여년만인 올해초 다시 회장을 맡았다.

朴씨는 분기별 모임을 통해 농사관련 강연등으로 농촌발전을 위한 모임으로 꾸려갈 생각. 朴씨는 지난해 농어촌진흥 대상을 수상한 상금 5백만원을 농우회 기금으로 기탁했으며 먼 훗날 농장도 농우회 발전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朴씨는 농사일 이외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정치판에 염증을 느껴 다시 농부의 길을 택했기에 정치권과는 담을 쌓고 지낸다.

朴씨는 국회의원 시절 못다한 일들을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자서전 출간을 위해 요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원주 = 이찬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