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동공이 활짝 열리면, 나 흥분했다는 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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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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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이석인 옮김
생각의나무, 456쪽, 2만9000원

‘서클렌즈’. 눈동자를 커 보이게 하는 미용 렌즈다. 예뻐지려고 요새 애들 별 짓을 다 한다 싶겠지만, ‘서클렌즈’는 이미 르네상스 시대부터 유행했다. 당시 이탈리아 귀족 여성들은 동공을 확대시키려고 독초(毒草)의 추출액을 눈동자에 떨어뜨렸다. 구혼자에게 매혹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다. 그 풀의 이름은 벨라도나(belladonna).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다.

동공확대의 효과는 무엇일까. 남성 상대로 실험을 해 봤단다. 똑같은 여인의 사진을 두 장 보여준다. 얼핏 봐선 다를 게 없다. 한 장의 사진에 가볍게 ‘포샵질’을 해 동공의 크기가 좀 더 커지게 했을 뿐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자신도 모르게 여인의 동공이 확대된 사진을 선호했단다. 왜 그랬을까. ‘비밀을 폭로하는 것은 늘 두 개의 눈’이다. 눈은 직접적으로 뇌의 일부다. 두개골에 숨은 뇌가 앞으로 쭉 뻗어 나온 것이 곧 ‘안구(眼球)’다. 성적 관심이 고조되면 혈압의 상승과 함께 동공도 활짝 열린다. 0.2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동공은 2㎜에서 8~9㎜로 팽창한다. 그렇다면 ‘서클렌즈’는 “나 예뻐 보이지?”라기보다 “나 흥분했어!”라는 신호가 아닐까. ‘꼬리 치는’ 쪽이 어디였는가를 따져 볼 일이다.

동공의 심리학이 제법 야릇하다면 안구의 물리학은 다소 기괴하다. 안구의 부피는 겨우 6.5㎤ 정도지만, 이 안구는 용량 29㎤의 안와(眼窩·안구가 들어가 있는 두개골의 움푹 파인 부분)에 담겨 있다. 여섯 개의 근육이 안구를 꽉 붙들고 있지 않으면, 숨을 쉴 때도 눈알은 안와 안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녀야 한다. 과학 저술의 재담꾼 데이비드 보더니스가 인체의 모든 것에 대해 쓴 책이다. 진화의 놀라운 역사가 매 순간 우리 몸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신비 체험’을 할 수 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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