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이혼소송 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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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 할아버지와 83세 할머니가 서로 이혼소송을 진행 중이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이들은 역대 이혼소송 제기자 중 최고령이다.

할아버지는 1950년대부터 서울 도심에서 한의원을 운영했다. 그는 결혼한 상태였지만 양품점을 경영하던 할머니와 사랑에 빠졌다. 한국전쟁 때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도 할아버지의 따뜻한 모습에 끌렸다. 70년대 들어 지병을 앓던 할아버지의 부인이 사망하자 두 사람은 재혼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전 부인과 사이에서 태어난 6남매는 할머니를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녀들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내심 불편했지만 할아버지만 보고 살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할아버지와의 관계마저 악화됐다. 할아버지는 “2000년대 들어 할머니가 미국 하와이에 있는 콘도에 놀러 가 다른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딸들이 나를 괴롭혀 살 수가 없다”고 항변했다.

급기야 지난해 5월 할머니는 살림을 정리해 집을 나왔다. 이후 할머니는 “딸들의 종용으로 할아버지가 나를 신뢰하지 않아 더 이상 결혼생활이 불가능하다”며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냈다.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며 수십억원의 재산 분할도 함께 청구했다. 할아버지도 곧이어 이혼소송을 냈다. 일방적으로 집에서 나가버리고 다른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귀책사유가 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측은 할머니가 과거 ‘4억5000만원을 받고 이혼한다’는 각서를 쓴 적이 있다며 그 선에서 합의하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는 각서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명해 효력이 없다고 반박한다.

지금도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재산은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할아버지의 아들은 명문대 법대 명예교수고, 손자는 변호사로 유력 정치인의 사위다. 할머니도 젊은 시절 모은 재산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명의 딸 중 한 명은 사망했고 한 명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가정법원 재판부는 다음 달 초 변론을 종결짓고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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