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동선 미리 파악 … 차량 다가오자 매고 있던 폭탄 띠 터뜨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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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공격이다! 움직여. 그냥 가!”

18일 오전 8시40분(현지시간). 예멘 사나 공항에서 10㎞가량 떨어진 시내 중심가 도로는 아수라장이 됐다. 16일 발생한 예멘 관광객 테러사건의 희생자 유족과 한국 정부 신속대응팀 팀원이 나눠 탄 3대의 차량이 다시 폭탄테러 공격을 받았다. 폭탄은 앞서가던 경찰 차량과 뒤따르던 한국인 탑승 차량 사이에서 터졌다. 차량 주변은 순식간에 뿌연 연기로 가득 찼다. 당황한 현지 운전기사는 어쩔 줄 몰라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안 했다. 경찰조차 서로 고함만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정부 신속대응팀은 빨리 현장을 벗어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전속력으로 차를 몰아 사나 공항으로 향했다. 폭탄 공격으로 차량 앞 유리창은 박살 났지만 다행히 차가 달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인명 피해도 없었다. 테러범이 폭발물 스위치를 서둘러 누르는 바람에 차량이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은 덕분이었다. 한 시간여를 달려 차량은 사나 공항에 도착했다.


그제야 정부 관계자들은 공격받은 차량 앞 유리와 차체에 테러범의 것으로 보이는 살점과 혈흔이 낭자한 것을 발견했다. 가슴을 쓸어내린 유족은 오전 10시 두바이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편에 예정대로 탑승했다. AFP·dpa통신 등 외신들은 이날의 긴박했던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 AFP는 예멘 현지 경찰의 말을 인용해 “테러 현장에서 신분증을 발견했으며 자살 폭탄 테러범은 스무 살 학생”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오전 8시 한국인 일행은 수도 사나의 샤흐란 호텔을 나섰다. 이틀 전 예멘 시밤 유적지 테러사건의 희생자 시신 운구절차가 마무리됨에 따라 예멘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아 시신을 한국으로 이송하는 길이었다. 예멘 경찰차 바로 뒤 승용차에는 석유공사 김태욱 대리, 이기철 심의관, 마경찬 여행사 사장, 장대교 서기관 등 4명이 탔다. 그 뒤엔 유족 3명과 유족 인솔 외교부 직원 이명광씨가 탄 차량 2대가 따랐다. 호텔을 떠난 차량 행렬이 20분을 달려 주택 밀집지역을 벗어나 한적한 지역으로 들어선 순간. 도로변에서 서성거리던 20세가량 청년이 갑자기 차량 행렬로 뛰어들었다. 눈깜짝할 사이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차량이 심하게 흔들렸다.

2차 테러에 예멘 당국도 당황했다. 사나와 시밤은 지리적으로 500㎞ 정도 떨어져 있다. 거리만큼이나 치안 상태도 다르다. 예멘 북서부의 수도 사나는 중앙정부의 힘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시밤에 비하면 치안이 안전한 지역이다. 한국 교민 200명 대부분도 사나에 살고 있다. 이번 테러 전까지는 피랍 이후 5일 만에 풀려난 한국대사관 소속 외교관 가족의 납치 사건(1998년)이 가장 큰 사건이었다. 1, 2차 테러 사건의 범인들이 같은 단체 소속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1차 테러가 벌어진 지 사흘 만에 예멘에선 가장 안전하다는 사나에서 밝은 아침에 대로에서 테러 희생자 유가족과 해당 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테러를 벌인 것은 이번 테러 사건이 한국을 상대로 치밀하게 계획됐다는 추측까지 낳고 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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