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누보 로망'개척 프랑스 작가 알랭 로브 그리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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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누보 로망 (신소설) 의 개척자인 프랑스 작가 알랭 로브 그리예 (75)가 주한 프랑스대사관과 대산재단 공동초청으로 11일부터 22일까지 한국을 방문했다.

1957년 가히 혁명적인 소설 '질투' 로 프랑스 문단에 파문을 일으킨 로브 그리예는 프랑스문학에 현대성의 기틀을 마련한 장본인이며 20세기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작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있다.

그를 만나 누보 로망과 현대소설의 본질을 알아봤다.

- 누보 로망하면 일반독자들은 난해하고 건조하기 짝이 없는 뭔가 온기 없는 소설로 이해하기 십상인데. "문학과 소설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는 누보 로망을 이해하기 어렵다.

전통적인 개념의 소설이란 주인공이 등장하고 거기에는 줄거리가 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재미 있는 줄거리를 들려주는 이야기꾼이다.

그러나 누보 로망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나는 소설은 시대와 마찬가지로 진화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독자를 즐겁게 해준다거나 미적 쾌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시도를 단념하고 '소설성' 이란 허구를 포기해야 한다. "

- 그렇다면 누보 로망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있는 현실을 그대로 명석하게 파악하려는 시도다.

종전까지 작가는 자신이 꾸며낸 허구의 덫에 걸려 주변에 있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캐내지 못했다.

누보 로망에서 작가란 피도 눈물도 없는 정밀한 렌즈에 불과하다.

이는 '마농레스코' 나 '레미제라블' 에서와 같이 19세기까지 작가들이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가졌던 전지전능한 자세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그들은 참된 인간과 세계를 표현하기보다 일관된 스토리 연결을 위해 인물의 심리조작을 마다하지 않았고 윤리나 사상으로 장식을 일삼았다.

그러나 실제 세상은 그러한 논리로 형성되어 있지않다. "

- 당신의 대표소설 '질투' 에 대해 말해달라.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를 상상해보라.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애썼다.

'질투' 의 등장인물은 나이도 가정도 배경도 없다.

화자와 A라는 인물, 그리고 등장하지 않는 프랑크라는 사내, 이 셋의 삼각관계가 주테마로, 인물의 성격을 끌어내기보다 처해있는 상황과 현존의 묘사에만 무게를 두었다. "

- 누보 로망과 바로 그 전에 풍미했던 실존주의 문학의 관계를 말한다면. "실존주의문학이 전후의 절망과 허무 속에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가치와 윤리를 재건하는데 힘을 썼다면 누보 로망은 철학적.윤리적 '불순물' 을 제거하고 현실에 대한 투명한 파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상반된다고 할 수있다. "

-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도스토예브스키이다.

그의 소설에는 일관성 있는 논리에 의해 구축된 인간의 모습이 없다.

부조리한 세계와 인간등 과거 어느 소설의 척도로도 이해될 수 없는 비논리적 구조에 도스토예브스키 문학의 위대성이 있다. "

- 지난 78년에 이어 두번째 한국 방문에 대한 소감은. "지난 번에 본 한국은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었다.

지금의 서울은 전혀 다르다.

아마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다른 도시로 변했는지도 모른다. "

최성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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