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대역사]4.지브롤터 해저터널…지층구조 확인작업 마무리 단계(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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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유럽과 아프리카는 본래 한 땅덩이였다.

신생대 제3기말에 일어난 지각변동으로 갈라져 두 대륙이 됐다.

그로부터 5백만년이 지난 지금 인간의 힘으로 아프리카와 유럽을 다시 잇는 대역사 (役事)가 진행되고 있다.

스페인과 모로코가 공동으로 추진중인 지브롤터 해저터널 프로젝트다.

모로코 북단 (北端) 의 작은 포구 (浦口) 시레스. 건너편에 보이는 스페인의 카날레스 곶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느껴진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지점간 거리는 14㎞. 두 대륙을 잇는 최단 (最短) 루트다.

쾌속선으로 20분밖에 안걸린다.

지난 80년 모로코와 스페인은 '지브롤터 해협 연결을 위한 협력협정' 을 체결했다.

최단 직선루트를 따라 교량이나 터널을 건설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했지만 포기했다.

수심이 최고 9백m나 되는데다 물살이 세고 지층구조가 불안정해 기술적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난 탓이다.

양국 기술자와 정부 관리들로 구성된 공동위원회는 새로운 연결 루트를 찾아나섰다.

연결거리가 다소 늘어나더라도 수심이 얕고 해류 이동이 적은 곳을 택하며 반드시 직선일 필요는 없다는 방침이 정해졌다.

수년간에 걸친 해양조사 끝에 스페인의 팔로마 곶과 모로코의 말라바타 곶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약간 굽은 곡선으로 연결하는 최저 수심 루트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두 지점간 연결거리는 28㎞로 최단루트의 두배지만 최고 수심이 3백 밖에 안되는데다 전체 루트의 절반인 14㎞가 수심 50m 이하인 대륙붕이어서 기술적으로 가장 타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연결방법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가 시작됐다.

당초 양국 기술자들 사이에서는 ①해저터널 굴착②해상 (海床) 튜브 설치③수중튜브 설치④교량건설등 네가지 안이 검토됐다.

그러나 해저 지표면이나 수중에 일종의 파이프 라인 형태의 대형 튜브를 고정시키고 그 안에 철도나 도로를 건설하는 ②안과 ③안은 일찌감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새로운 시도라는 점은 매력이지만 기술적 위험 부담이 크다는데 쉽게 합의가 이뤄졌다.

터널파와 교량파간의 열띤 논의가 계속됐다.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국왕과 함께 지브롤터 연결 프로젝트를 현실화한 장본인인 하산 2세 모로코 국왕은 교량파였다.

이용자 입장에서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장기간에 걸친 기술적.경제적 타당성 검토는 두가지 안을 조목조목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세계적 전문가들이 참가한 국제회의가 네차례나 열렸다.

교량보다 철도용 터널 굴착이 여러 측면에서 타당하다는 결론이 난 것은 지난 95년. 그 무렵 완공된 영.불 해저터널의 영향도 컸다.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 시내 한복판에 있는 3층짜리 석조건물 입구에 국립해협연구회사 (SNED) 란 간판이 붙어 있다.

지브롤터 프로젝트의 산실 (産室) 이다.

모로코측 실무총책을 맡고 있는 지랄리 샤피크 SNED 사무총장은 "영.불 해저터널은 지브롤터 해저터널의 실험실" 이라고 말한다.

"영.불 해저터널은 기술적으로는 성공이지만 재정적으로는 실패한 케이스" 라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좋은 참고서가 되고 있다" 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지브롤터 해저 철도터널 건설은 영.불 해저터널과는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다.

영.불 해저터널은 먼저 보조터널을 뚫고 그 양쪽에 두개의 본터널을 동시 굴착하는 2단계로 진행됐다.

그러나 지브롤터 해저터널은 이를 보조터널 - 제1 본터널 - 제2 본터널의 3단계로 나누고 단계마다 사업주체를 달리함으로써 재정부담을 분산시킬 방침이다.

보조터널을 실험터널로 이용하는 것도 새로운 개념이다.

완공후 정비와 비상용 서비스 터널로 사용될 보조터널을 굴착하면서 취득하게 되는 각종 정보와 노하우를 철도차량이 다닐 본터널 굴착에 활용함으로써 본터널 굴착 경비를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현재 양국은 최저 수심 루트를 따라 해상에 24개의 파이프 라인을 박고 지층구조의 일체성을 최종 확인하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는대로 양측 해변을 시작으로 보조터널 굴착에 착수할 예정이다.

공동위원회는 총공사비를 42억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공사기간은 20년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제1 본터널 완공까지 12년이 걸려 일단 개통시기는 2009년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당분간 한개의 터널로 셔틀용 철도차량을 교행 (交行) 시키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추후 교통량에 따라 제2 본터널 건설시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한개의 터널만으로도 연간 1백58만대의 승용차와 46만대의 화물차량, 1천6백만명의 승객을 수송할 수 있어 현재 운항중인 페리와 합하면 적어도 2040년까지는 제1 본터널만으로 교통수요를 충당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보조터널 굴착까지는 스페인과 모로코 정부가 담당하고 본터널 굴착부터 민간에 넘긴다는 것도 새로운 건설방식이다.

즉 1단계 완공후 국제 공개입찰을 통해 사업주체를 선정, 자체자금 조달을 통해 제1 본터널 굴착.터널내 철도 건설.터미널 건설등 2단계 공사를 맡도록 하고 40년간 운영권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2단계 공사에 필요한 24억달러 가운데 20%만 사업 주체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양국 정부 보증아래 국제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하는 방식을 취하도록 할 방침이다.

모로코와 스페인 양국은 현재 진행중인 해저지층구조 확인작업이 마무리되는대로 최종 사업보고서를 유럽연합 (EU)에 제출할 계획이다.

지브롤터 프로젝트가 단순히 두나라만의 사업이 아니고 두 대륙의 문제인만큼 EU가 참여하는게 당연하다는 논리다.

보조터널 굴착에 필요한 3억5천만달러를 양국과 EU가 똑같이 분담토록 한다는 것이 양국 정부의 구상이다.

"모세의 기적은 스페인과 모로코의 기적일 수 있다" 며 지브롤터 해협을 연결하는 공통의 이상을 밝힌 양국 국왕은 결국 1억달러 남짓한 '푼돈' 으로 대역사를 실현하는 꿈에 부풀어 있는 셈이다.

라바트 (모로코) =배명복 특파원

[해저터널 제원]

▶총연장 : 38.7㎞▶해저구간 : 27.7㎞▶철도터미널간 거리 : 42.7㎞▶최고 심도 : 해수면하 4백▶셔틀용 철도 운행속도 : 시속 1백20㎞▶운행 소요시간 : 총 30.5분 (터널구간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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