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한 보통미인…잡지 '샘이 깊은 물' 표지모델 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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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마음을 쏠리게 하는 흑백사진 한장. 단아한 모습의 한 여성이 미소를 짓고 있다.

왠지 낯설지 않다.

지성미도 느껴진다.

이 정도 힌트라면 한 잡지의 표지를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이 여성월간지 '샘이 깊은 물' 을 생각했다면 제대로 짚은 거다.

표지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어느 잡지나 마찬가지다.

개중에서도 '샘이 깊은 물' 은 유별나다.

항상 평범한 여성의 얼굴이 담긴 흑백사진 - .84년 창간 이후 올 10월호까지 1백68권째 변함없다.

유명인물이라고 해야 발레리나 강수진과 가수 신효범뿐. '스타 잡기' 경쟁이나 컬러시대를 떠올리면 이 잡지의 거꾸로 튀는 편집방침을 짐작할 만하다.

'샘이 깊은 물' 의 신조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섬기는 잡지 만들기' 다.

전통적 가치와 인간미를 존중하자는 것이다.

발행인이었던 고 한창기씨가 늘 강조했던 말이다.

내용도 평범한 사람들의 잔잔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당연히 표지에도 이같은 생각이 묻어나올 밖에. 창간 초기에는 어린아이를 업은 시골아낙의 모습이나 화목한 가족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러나 차츰 이런 모델은 섭외하기 어려웠다.

이것저것을 고려하다 결국 20~30대 여성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 방침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표지모델 선발기준은 엄격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해야 한다.

그렇다고 배우 뺨치게 너무 예뻐도 안된다.

성형수술 받은 얼굴은 무조건 대상에서 제외. 머리카락을 염색한 여성도 탈락이다.

지적인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대충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느낌' 이다.

잡지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그 무엇' , 하지만 너무나 애매한 느낌 말이다.

이렇게 까다로우니 입맛에 맞는 모델을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다.

모델 한명을 찾고자 전사원이 매달린다.

슈퍼마켓이건 길거리건 가리지 않는다.

'저 여자다' 싶으면 염치불고하고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

몇년전만 해도 모델 제의를 받은 여성들은 대부분 '노' 라고 답했다.

시댁과 남편을 의식해서다.

본인이 쑥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대다수가 흔쾌히 응한다.

스스로 잡지사로 자신의 사진을 보내는 적극파도 있다.

심지어 남편이 "내 아내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 며 나서는 경우까지 있다.

이렇게 후보로 지목되는 사람은 한달 평균 10명 내외. 하지만 낙점이 떨어졌다고 모두 표지모델로 등장하는 건 아니다.

우선 카메라 테스트. 대충 사진을 찍어본다.

이중 '똑 떨어지는' 대상자가 있다면 행운이다.

대개는 2~3명을 놓고 격론을 벌인다.

말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간부진과 편집부원들의 투표로 가고 만다.

표지에 얼굴을 내게 되더라도 모델료는 없다.

대가로는 잡지 6개월 구독권과 대형사진이 고작이다.

아름다움을 돈으로 거래하는 것 자체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모델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미지수지만.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은 그보다도 더 흘렀다.

표지 속의 여성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의 취향도 당연히 달라졌을 테지만 그나마도 작가가 몇사람째 바뀌지 않았던가.

창간때부터 94년 10월호까지 10년동안 활동했던 강운구 (56) 씨. 그의 스타일은 '한국적 아름다움' 과 '소박함' 으로 표현된다.

그가 선호하는 얼굴은 '전통형' .눈이 작고 코도 두루뭉실하지만 기품을 잃지 않는 스타일을 좋아했다.

퍼머 머리도 자연미를 해치는 것으로 봤다.

그래서 그가 촬영한 여성의 모습은 막 창포물로 머리를 감은 듯 신선하다.

강씨의 바통을 이어받은 서헌강 (30) 씨는 올 7월호까지 표지를 만들었다.

젊은 세대답게 새로운 감각을 선보였다.

모델의 생김새부터 달라졌다.

큰 눈매에 오똑한 콧날등. 한마디로 세련된 '오늘 여성' 을 보여준다.

모델의 연령대도 낮아졌다.

그의 사진에는 주로 젊은 처녀가 등장했다.

화장등 몸치장에 있어서도 너그러운 편. 물론 신부화장하듯 꾸미고 오는 모델은 그도 못 참는다.

11월호까지 활동한 최광호 (42) 씨의 경우 '예쁜 사진' 을 거부하는 스타일. 미국과 일본 등에서 10여년을 보낸 유학파임에도 흙내음 나는 사진을 좋아한다.

그가 찍은 표지사진에선 풋풋함이 느껴진다.

이들은 촬영하기에 앞서 꼭 모델과 대화를 나눈다.

외모에 가려진 내면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얼굴이 아름다워도 말투가 경박하거나 사고방식이 유치하면 사진 역시 잘 안나온다.

찍는 사람의 마음에서 애정이 우러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속내가 깊고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듯 느껴지면 사진도 잘 나온다.

용모는 그저 그렇더라도 말이다.

이를 가리켜 서헌강씨는 '모델이 가진 내적 아름다움이 렌즈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신비로운 체험' 이라고 말한다.

시대의 흐름과 작가의 선호에 따라 달라져온 '샘이 깊은 물 여성' 의 아름다움. 그것은 이제 어떻게 변할까. 비록 흑백사진으로 남을지라도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 그대 이름이 진짜 미인일 것은 변함없으리.

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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