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에세이] ‘암탉은 수탉 앞 울면 안 돼’ 대혁명의 나라 속담 맞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프랑스 관공서나 학교 건물에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대혁명 정신이 새겨져 있다. 자유와 박애라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평등’이란 단어는 성 평등에 관한 한 전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세계 여성의 날(8일)을 맞아 최근 발표된 자료를 보면 프랑스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잘 알 수 있다. 여성 국회의원(하원) 비율(18.2%)은 전체 조사 국가 평균보다 낮았다. 나이지리아에 이어 세계 65위다. 스웨덴·핀란드 등 여성이 정치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이웃 유럽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이보다 훨씬 낮은 13%대에 불과하다. 여성의 정계 진출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다.

2007년 대선에서 니콜라 사르코지와 경합했던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은 여성으로는 처음 결선 투표까지 간 정치인이었다. 당시 선거 결과에도 성차별이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있다. 선거 운동 기간 여성 후보 반대 운동이 벌어졌고, 보다 못한 지식인들이 ‘성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막판 서명 운동을 하기도 했다.

현재 유권자 비율은 여성이 53%로 더 많지만 여전히 대선에서 여성 후보의 당선 가능성은 작다. 여성인 마르틴 오브리 사회당수의 대선 시뮬레이션 득표율도 지지율보다 10%포인트 이상 떨어진다.

사르코지는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했는지 지난 대선에서 내각의 여성 비율을 50%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공약했고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요즘도 인터넷 등에서 경제·고등교육·법무 등 여성 장관의 실정을 비난할 때 종종 성차별적인 발언이 등장하곤 한다. 프랑스에선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이를 문제 삼거나 처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속담에도 성차별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을 연상시키는 ‘암탉은 수탉 앞에서 울면 안 된다’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국가 상징이 수탉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탉은 아예 수탉 앞에서 울지도 못하게 하는 나라가 프랑스다. 이러니 기혼 여성이 남편의 동의 없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1960년대에 와서야 부여됐을 정도로 남녀 평등에 관한 한 선진국은 아닌 것 같다.

전진배 파리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