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미국경제가 주는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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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우리나라 경제는 매우 암울하다.

대기업과 관련 중소기업의 줄이은 부도사태와 도산은 거의 금융공황사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구조적인 문제를 떠나 정치권에서 야기된 경제의 어려움은 경기회복기가 언제이든간에 비관적인 전망을 낳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이러한 추이는 미국을 축으로 한 세계경제의 흐름과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 보인다.

미국경제는 60년대의 풍요로웠던 시기가 다시 도래하고 있다고 들떠 있으며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해 있다.

상반기의 미국경제는 성장률이 5.6%로 73년 이후 최고치를 보였으며 실업률 4.9%, 인플레 2.2%라는 안정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최근의 경제호황을 60년대와 비교해 '새 황금기' 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러한 호황이 장기적으로 20년이상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경제의 부활은 컴퓨터.통신산업.생명공학 등 미래산업분야에서 진행된 엄청난 기술혁신과 투자가 경기호황의 주요 엔진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기업들의 혁명적 경영혁신이 이뤄졌으며 흡수.합병을 통한 대형화는 미국 기업들을 세계의 강자로 만들었다.

특히 다국적기업들은 아웃소싱을 이용해 기업의 효율화에 크게 기여했고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기수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유연한 노동시장과 자유경쟁시장을 뒷받침하는 경제적 자유가 주요 요인으로 지적됐다.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경제적 자유' 라는 대목이다.

미국에서는 통신및 전력산업부문에서 대폭적인 규제완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선.후진국들을 망라한 세계 각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규제완화.공기업의 민영화.균형재정.투자자유화 등의 새 경제정책을 약속이라도 하듯 채택하고 진정한 자유경쟁시장을 실현하는 길이 번영의 열쇠가 된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참다운 경제적 자유는 부정부패가 없을 때 실현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우리는 한보사태를 통해 부정부패가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는 것을 목격했다.

물질적인 피해도 헤아릴 수 없지만 많은 기업들로부터 공정하고 균등한 기회를 박탈해 버린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경제적 자유와 자유경쟁시장은 정부와 공적 조직에서 부정부패가 없고 정의로운 사회가 구현될 때만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

정책과 의사결정이 학연.지연.돈으로 좌우된다면 경제적 자유는 의미가 없으며 가격의 자원배분이 무력화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미국경제의 부활은 그 이면에 정의로운 사회와 깨끗한 정부가 든든하게 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겠다.

미국 존스 홉킨스대의 행크 교수는 각국의 경제자유지수를 측정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경제자유지수는 각국의 통화정책.무역자유화.사유재산권.정부의 청렴도.관리들의 부정부패 등 전반요소를 지수화해 세계 26개국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제자유지수가 10% 증가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7~14% 증가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는 경제성장이 단순히 생산요소나 기술과 같은 하드웨어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가격기능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장, 균등한 기회와 참여 그리고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진정한 경제적 자유, 정부의 합리적인 거시경제관리및 조정기능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측면의 중요성이 각 나라의 실증적 연구를 통해 입증된 것이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보아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리나라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헤쳐나가는 길은 바로 이같은 평범한 진리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총생산 (GNP) 과 국민소득은 이제 세계 상위권에 진입했으나 캐나다 프레이저연구소에서 측정한 경제자유지수는 평점이 C로서 세계 18위에 머물고 있다.

특히 행정규제와 부정부패는 경제적 자유를 저해하는 치명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경제회생의 묘약은 먼저 경제적 자유를 신장하기 위한 각 부문의 지속적 제도개혁에서 찾아야 한다.

동시에 깨끗한 정부, 청렴한 공직상, 공정한 상거래를 확립함으로써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사회와 신뢰경제를 만드는 길이 기술혁신과 함께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는 길이요,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선 <경희대 경제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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